섣부른 평가, 조급한 결론
오늘날의 사람들은 사람을 논하고 사건을 논함에 정해진 견해라고는 없고 대부분 성질이 조급하다. 이런 까닭에 오늘은 이처럼 이렇게 이야기하고 내일은 또 저렇게 이야기하면서, 어제 이야기한 것과 어긋난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않는 자도 있다.
어떤 사건의 시비도 시일이 경과하고 여론이 모아지면서 모두 같아진다. 이렇게 되면 조급한 자가 아니더라도 일세의 공론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처음에는 다른 의견이 들려오고, 곧 이어서 거기에 맞장구치는 자가 생긴다. 그러면 며칠 안 지나 시비가 반반이 된다.
그러니 몇 년 뒤엔 정론이 필경 어느 쪽에 속하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맹자께서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하거나 모두 불가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한다’는 교훈을 남기신 까닭이다.
큰 요점인즉,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편을 마친 뒤에야 의심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글자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앞질러 말한다면, 조급한 사람인 셈이다. 인물을 논하고 사건을 논하는 것도 모두 그렇다.(沆瀣丙函 , '睡餘瀾筆' 中)
한번은 설부(說郛)가 책상에 놓여있었는데, 한 손님이 우연히 그 중 한 권을 뽑아 ‘채소를 심는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고는, 물러나 다른 사람에게 “설부는 농서(農書, 농사에 관한 책)다.”라고 하였다. 또 유학 서적 한 권을 얻은 적이 있는데, 빈 장에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한 경험 몇 가지가 쓰여 있는 것을 마침 손님이 보고서는 의학책이라고 여겼다.
이들은 비루한 사람이었을 뿐이지만 박식한 선비들 중에도 이러한 병폐를 지니고 있는 자가 있다. 기효람이 사고전서(四庫全書)를 교감할 때, 그 편질이 너무 방대하여 두루 다 읽어볼 겨를이 없어서 우연히 찾아낸 한 두 가지 결점을 가지고 그 책 전부를 평가하기도 하였다. 앞의 손님이 설부를 본 경우와 무엇이 다른가?
세상에서 한 가지 사건으로 한 시대를 다 그러게 여기고, 한 마디 말로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모두 이런 부류이다.(縹礱乙㡨 '睡餘放筆' 下)
-홍길주(洪吉周, 1786∼1841), '수여삼필(睡餘三筆)' 중에서-
▲번역글 출처: 『항해 홍길주의 수여삼필연구』(남승희, 한문교육전공, 충남대 교육학석사 논문, 2009년 )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어느 정도 안다는 것을 전제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즉 무언가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안다고 해서 꼭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지혜는 정신의 네 자산 가운데 위계가 가장 높다. 지혜는 우리의 정신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통찰을 얻는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 이해를 갖추고 있음을 전제한다. -모티머 애들러, '평생공부가이드'(이재만옮김, 유유,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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