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바가 적으면 괴상한 것이 많다
계서(季緖) 유협((劉勰, 465년~521년, 중국 남조시대 양나라의 문학자, 최초의 문학비평서라 할수 있는 문학이론과 평론의 고전 '문심조룡'의 저자)은 작가의 반열에 들지도 못했으면서 남의 글 헐뜯기를 좋아하여 당세 거공들의 비웃는 바가 되었다. 대저 다른 사람의 글을 망령되이 헐뜯어서는 안 된다. 그 편장과 체제, 자구와 색상이 갑자기 내 안목을 놀래키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쉽게 평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읽은 책을 내가 다 읽은 것이 아니고, 내가 읽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읽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저 사람이 비록 명성이 낮고 배움이 부족하더라도 간혹 어쩌다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을 알 수도 있거늘 하물며 박식하기가 나보다 나은 사람일 경우이겠는가?
인품의 높고 낮음과 문사의 좋고 나쁨은 능히 스스로 아는 경우가 드물다. 오직 가슴 속에 담긴 서적의 많고 적음은 마땅히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아, 다른 사람의 작품 중에 내 눈에 익지 않은 것과 만나게 되면 마땅히 조심스럽게 “이는 잘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으니, 툭하면 소곤소곤 입을 놀리면서 “옛날에는 이런 것이 없었어.” 라고 말한다. 어찌 등 뒤에서 야유하는 자가 있음을 생각지 않는단 말인가?
옛 말에 이르기를, “본 바가 적으면 괴이한 바가 많다(少所見, 多所怪).”고 했는데 바로 이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
성현의 글을 읽는 것은 덕에 나아가고 행실을 닦아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논어》 한 권을 읽었는데, 한 사람은 마치 자기 말처럼 다 외우지만 막상 어떤 경우에 닥치면 일찍이 생각이 책 속에 미치지 못하고 그 행동하는 바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읽은 것과는 반대로 한다.
한 사람은 능히 한두 장도 외우지 못하지만, 화나는 일이 생기면 문득 맹렬히 반성하여 이렇게 말한다. “《논어》 중에 한 구절이 있는데 내가 그 말을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니 화가 날 때 마음대로 하면 뒤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는 식의 말이었다.”하고는 마침내 참고 이를 가라앉혔다.
뜻하지 않은 재물과 마주해서는 또 맹렬히 반성하여 이렇게 말했다. “《논어》중에 한 구절이 있는데 내가 그 말이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재물을 앞에 두면 모름지기 의리에 합당한지의 여부를 헤아려 보라는 뜻이었던 듯하다.”고 하고 마침내 물리쳐서 취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마침내 어느 사람이《논어》를 제대로 읽은 것이겠는가?
또 어떤 사람은 일이 닥치면 먼저 경전에 나오는 경계하는 말을 꺼내서 의논하는 자의 입을 막고, 인하여 장차 자기가 한 옳지 않은 일을 그럴 듯하게 꾸미고 왜곡해서 의리에 합당하게 행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비록 요순이라도 감화시킬 수가 없다. 또 늘상 자기의 단점을 말하여 남들로 하여금 다른 말을 할 수 없게 하면서 장차 옳지 않은 일을 하고 나쁜 말을 할 때에는 도리어 먼저 그 좋지 않은 점을 말한 뒤에 이를 좇는다. 이 같은 사람은 또 일찍이 '생각이 책 속에 미치지 못하는 자의 죄인(不曾思到卷中者之罪人)'이라 하겠다.... ...
남에게 놀림을 받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재주와 능력이 부족한데도 자부심이 너무 지나친 까닭에 놀리는 자가 이를 틈타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방법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식견이나 문장을 살펴보아 모두 나보다 나을 것 같으면 나에게 식견과 문장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식견과 문장을 살펴보아 모두 나만 못할 것 같으면 나에게 식견도 문장도 없음을 알게 된다.
자기가 자신 보기를 항상 부족한 듯 여기면 남들이 반드시 나를 중히 여김을 알게 될 것이고, 자기가 스스로 자신 보기를 늘 오만하게 하면 남들이 반드시 나를 무시함을 알게 될 것이다.
- 홍길주(洪吉周, 1786∼1841), 『수여방필(睡餘放筆)』중에서 발췌-
▲번역글 출처: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창고』,홍길주지음/정민외 옮김/ 돌배게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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