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인간이해(人解)

사람은 천하 만물 가운데서 영물(靈物)인 까닭에 진실로 금수(禽獸,하늘과 땅의 짐승)와 비교할 바가 못된다. 그러나 무거운 것을 지고 나르는데는 소(牛)만 못하고, 장거리의 먼 곳을 가는데에는 말(馬)만 못하다. 물에 들어감에 있어서는 물고기만 같지 못하고, 바람을 타고 거슬러 하늘을 날아감은 새만 같지 못하다. 그러므로 사람과 금수(禽獸)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다만 사람만이 금수(禽獸)를 다스리고 부릴 수 있고, 금수(禽獸)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이 금수(禽獸)보다 영험(靈驗)한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할지라도 만약 천하에 사람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에, 금수(禽獸)가 살아가는데에 이무런 지장도 해(害)도 될 것이 없다. 반면에 천하에 금수가 없다면, 사람은 먹고 입고 사는데에 위태로울 것이다. 이로 보건대 사람의 처지가 과연 금수(禽獸)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예컨대 군자(君子)는 먹고 사는 생활의 자리에서, 농부나 베짜는 아낙네와는 달리 손으로 쟁기와 보습, 그리고 베틀과 배짜는 도구를 능히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런즉 과연 군자(君子)가 노동에 종사하는 농부나 베 짜는 아낙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세상에 군자(君子)만 존재하고 농부나 베 짜는 아낙네(績婦)가 없다면, 당연히 군자는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君子)가 농부나 베짜는 아낙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세상 천하에 군자만 있고 농부와 베짜는 아낙네(績婦)가 없는 경우는 없다. 사람만 존재하고 금수(禽獸)가 없는 경우 또한 없다. 아! 사람이 금수보다 나은 점은 오직 지각(知覺, 깨달아 아는 사유의 능력)과 언어(言語)에 있을 뿐이라고들 흔히 말한다. 그러나 하늘이 장차 비바람을 내리려함에는 사람은 그 낌새를 미리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금수(禽獸)는 그 기미를 먼저 알아챈다. 또한 금수(禽獸)는 사람의 말을 혹 알아 들을지라도, 사람 중에서 금수의 말을 아는 자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금수보다 나은 이유는 진실로 여기에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만일 사람이 금수보다 더 낫다는 분명한 근거와 존재의 이유를 찾지 않고서, 오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지각(知覺)과 언어(言語)가 있기에 금수보다 낫다고 자부하는데 그친다면, 이 또한 결국은 사람이 금수(禽獸)보다 못한 지경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홍길주(洪吉周, 1786∼1841), '인간이해(人解)'『표롱을첨(縹礱乙㡨)』제 1권-


"순자는  말하기를, “물이나 불은 기(氣)는 있으나 생명이 없고, 초목은 생명은 있으나 지각이 없으며, 금수는 지각은 있으나 의리(義理)가 없다. 사람은 기(氣)도 있고 생명도 있으며 지각도 있고 의리도 있으니, 천하에서 가장 귀한 존재이다.” 라고 하였다...그러나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사람 중에는 오히려 금수만 못한 사람이 있다....아, 사람이 어찌 금수만 못하겠는가? 단지 물욕(物欲)에 가려 그 전체의 청명함과 허령(虛靈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신령하고 순박한 상태)함을 잃어버렸기때문에, 오히려 한 점 밝은 곳이나마 가지고 있는 금수만도 못하게 된 것뿐이다. -윤기(尹愭 1741~1826), 협리한화 65조목〔峽裏閒話 六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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