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부귀와 빈천
부귀를 높이고 빈천을 낮추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마음이다. 부귀를 싫어하고 빈천을 즐기는 것은 궁핍하고 가난한 선비가 마음에 가진 뜻을 지키고자 굳세게 다 잡은데서 나오는 격한 감정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보통 사람이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을 선비의 말에 견주어보면, 전자든 후자든 치우치고 막힌 도량을 각각의 마음으로 깨달은 이치라고 스스로 믿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어찌 천하 만물 인생사의 섭리가 끊임없이 상호 순환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전체적으로 헤아려 보는 것만 하겠는가?
인생의 부귀 빈천은 때에 따라 옮겨지므로, 부귀가 빈천으로 바뀌는 수도 있고 빈천이 갑자기 부귀에 오르는 수도 있으니, 눈앞에 당한 높이거나 낮추는 것은 실로 잠시의 일인데 하필 그것을 근심하고 기뻐할 것인가?
천지간에서 진정한 부귀는, 자연의 섭리와 세상만물의 이치가 내 몸에 통하지 않음이 없고 집과 나라와 천하의 다스림과 배움과 익힘의 근본을 내 몸에 갖추지 않음이 없어, 백대(百代) 위와 백대 아래를 두루 망라하고 종합하여, 복과 제 맘껏 휘두르는 위세의 힘을 함께 누리는 권세를 잡은 사람도 빼앗을 수 없고, 백성의 재상(宰相)이 된 사람도 억제하지 못하며, 원근의 도(道)를 구하는 사람들이 와서 크고 작은 일들을 물어 결단하고 처신하니, 이것이 곧 큰 선비의 부귀이다.
또 진짜 빈천이 있다. 역상(曆象, 천체의 운행과 변화의 모양새를 살핌) 지리(地理)는 끄트머리도 보지 못하면서 제 고장에서 행하는 것은 오직 속된 말을 전하는 것뿐이며, 남의 부귀는 더럽게 여기되 제뜻은 조금도 굽히지 않으며, 의리에 맞지 않는 재물을 마구 모아 남들이 다 침뱉어 욕하며, 도리에 맞지 않는 벼슬을 얻어 남들이 부끄럽게 여기며, 제시하는 방도와 계책에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미치는 것이 없고, 이욕에는 반드시 끼어들어 빠뜨리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곧 짝없이 더러운 빈천이다.
보통 시속(時俗, 그때의 세상풍습이나 유행)의 부귀는 뜬구름같이 오가는 것이다. 가까우면 수십 년, 멀어도 1백여 년을 넘지 못한다. 근심과 즐거움이 반반이고 영화와 굴욕이 서로 따르는 것이니, 이는 결코 남에게 자랑할 것이 못 된다. 진정한 부귀는 한 몸을 기르는 데 항상 여유가 있고 정교(政敎, 다스림과 배우고 익힘)를 시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말로 전하면 곁에 있는 사람이 그 혜택을 기뻐하고 글로 전하면 먼 나라 사람들까지 가져다 쓰기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세상에 학문하는 사람이 많으나 이 부귀를 아는 사람은 드물고, 이 부귀를 얻은 사람은 얼마 안 된다. 이 부귀를 즐기는 사람이 드물기는 하지만, 이 부귀에 관한 언론과 서적을 들고 보면, 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먼 나라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가까운 나라 사람보다 더욱 깊은 까닭은 먼 데의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만이 아니다. 참으로 그 천지의 운화(運化, 천지간에 운행하는 에너지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조화를 이루는 것)를 즐기는 것은 동일한 규범이어서 이쪽과 저쪽,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서로 다를 것 없기 때문이다.
나라의 멀고 가까움 그리고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 부귀와 빈천, 귀하고 천함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저술한 서적을 취하는 것은 다만 내 마음으로 좋아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실로 천하의 현명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모두 함께 좋아하고 천지 기화(氣化, 에너지가 조화를 이룸)의 범위가 같은 것을 취해서이다.
※참조: 번역글을 필사하고 옮기면서, 개인적 이해를 돕는 차원으로 번역글을 완전 표절 및 참조하여 개인적으로 어려운 한자어나 개념어라 생각되는 부분을 나름 이해하는 한도내에서 가능한 한 맥락에 맞게 풀어쓰고 의역하고 정리하였다.
-최한기(崔漢綺1803-1879),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기측체의(氣測體義)/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 』중에서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정연탁 (역)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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