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도둑질 하는 자
절도나 강도가 어찌 빈궁한 사람 중에만 있겠는가? 부귀한 사람 중에도 있다. 가난한 사람은 굶주리다 못하여 밤중에 남의 집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곡식이나 돈을 훔치다가 인기척을 들으면 깜짝 놀라 얼른 피신한다.
그러나 부귀한 사람은 탐욕에 빠진 나머지 위세(威勢)를 빙자해서 선량한 사람을 능멸해 대낮에 수많은 재물을 강탈한다.
그 정상(情狀, 있는 그대로의 사정과 형편)을 논할 것 같으면, 가난해서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오히려 불쌍한 생각이 들지만, 부귀한 사람의 강탈은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나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는 이런 자를 엄한 벌로 다스리기를 바라는데, 이것을 어찌 얼굴만 보고 다 알 수 있겠는가?
또 세상을 속여 이름을 도둑질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스스로 그 이름을 도둑질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런 사람에게 속임을 당한 사람이 더 부끄러운 것이니, 이름을 도둑질한 자를 심하게 꾸짖을 것까지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도적(盜賊)이란 이름을 싫어하는 것이 곧 의(義)이며 염치(廉恥,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인데, 사람이 의와 염치가 없다면 사특한 욕심이 한정 없이 생기므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남의 꾐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나쁜 줄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범하기도 한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 '도적(盜賊)', 인정(人政) 제6권/측인문 6(測人門六)/지위(地位)-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조수익 (역) | 1980
"선한 사람, 선하지 못한 사람, 악한 사람, 악하지 않은 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선한 사람(善人)'이라고 평가되는 사람은, 만일 크게 화(化)한 '성인(聖人)'이 아니라면 반드시 아무 주장이 없는 '향원(鄕愿)'일 것이다." -최한기, '인정(人政) 측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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