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마음은 소리로 발하고 노래나 글로 표현된다

마음에 감동된 기(氣)가 구멍으로 나와 소리를 이루고, 사리(事理)의 용출(湧出, 치솟아 나옴)하는 소리가 말이 되고, 말이 장(章)을 이룬 것이 글(文)이 되니, 그 말을 듣고 그 글을 읽으면 그 마음에 온축(蘊蓄, 마음속에 깊이 쌓아둠)한 것을 헤아릴 수 있다. 


싫어함이 간절하여 소리로 발한 것이 곡(哭)이고, 좋아함이 깊어 소리로 발한 것이 노래가 되니, 노래와 곡을 들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천심(淺深, 깊고 얕음)과 성위(誠僞, 진정성과 꾸밈, 즉 거짓)를 분별할 수 있다.


일찍이 헤아린 바가 있는 것은 그 후에 비슷한 기미(낌새나 조짐)를 만나면 감동하는 것이니, 만약 전일에 헤아린 바가 없으면 어찌 제거(提擧, 어떤 문제에 대하여 말을 꺼냄)하는 것도 없이 발하겠는가? 


감동하는 데 미쳐서는 소리를 인하여 절주(節奏, 리듬, 장단, 박자)가 되고 사리를 형용한 것을 말이라 하는데, 이치에 밝은 사람은 그 말이 간략하면서도 갖추어지나 이치에 어두운 사람은 말이 번거롭고 어지러워 소견(所見)의 정추(精麤, 정밀함과 엉성함)와 얻은 바의 천심(淺深, 깊고 얕음)이 언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개중에 문장의 색채가 있는 것을 전사(轉寫, 말소리를 음성 문자로 옮겨 적음)한 것이 글이 되니, 말을 알아듣는 묘법과 글을 읽은 공이 있는 사람은 그 글뜻을 미루어 그 마음에 쌓인 것을 헤아린다.


곡(哭) 소리는 한 가지이지만 애통함의 천심과 성위(誠僞)를 그 소리에서 알아들을 수 있고, 노래 소리는 한 가지이지만 흥취의 천심과 성위도 또한 소리에서 들을 수 있으며, 또 그 기색(氣色)을 참고하여 저것과 이것을 서로 증험하면 자연실정(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정이나 상황)을 엄폐할 수 없는 단서가 있을 것이다.《추물측사, 이종술역 1980》


덕을 이룬 사람은 노둔(魯鈍, 미련하고 둔함)한 것 같고, 덕을 그르친 사람은 자기의 지혜와 재능을 과장한다. 총명을 지닌 사람이 덕을 이룸에 이르면, 말을 망령되게 하지 않고 행실을 기필함(어떤 일을 꼭 이룰 것을 때를 정하여 약속함)이 없어(즉, 허황되거나 헛된 약속이나 맹세, 기대 등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 일찍이 자기의 뛰어난 총명을 남에게 나타내지 않으므로 노둔한 듯하다. 


그러나 조그만 지혜를 가진 사람은 능히 대도(大道)를 엿보아 헤아리지 못하므로, 덕을 이룬 사람을 보고도 능히 복종하지 않을뿐더러, 혼매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보면 매양 멸시하고 업신여긴다. 그래서 늙어 죽기에 이르도록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기를 마지아니하여 스스로 그 덕을 그르치게 된다.


저 선악이 구별되는 것을 실제로 체득하지 못하고, 한갓 착하다는 명예나 부러워하여 억지로 본받으려는 사람은 오히려 바르지 못하면서 요행으로 사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악의 나뉨은 털끝같이 은미한 데 있으나, 그것이 나타남에 미쳐서는 반드시 서로 반대로 치달려 점점 멀어진다. 비록 기미(幾微, 낌새, 조짐)에 밝은 사람이라도 창졸간에 취사를 결정할 때를 당하면 착오를 일으키기 쉬운데, 하물며 실(實)을 얻음이 없이 남의 흉내나 내는 사람이겠는가. 


전(傳)에 ‘여우를 삵이라고 하는 것은 여우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또한 삵도 모르는 것이다.’ 하였으니, 시비(是非, 옳고 그름)와 충사(忠邪, 충직함과 간사함)로부터 선악(善惡)이나 물아(物我, 객체와 주체)의 나뉨까지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추기측인, 조준하역 1980》


-최한기(崔漢綺1803-1879), 『기측체의(氣測體義)/ 추측록(推測錄)/제5권 추기측인(推己測人), 제6권 추물측사(推物測事)』중에서 발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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