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뜻이 같고 도가 합치되면 어울리고 다르면 공격한다

뜻이 같고 도(道)가 합치되면 서로 이끌어주는 보탬을 기뻐할 것이고, 뜻이 같지 않고 도가 합치되지 않더라도 서로 탁마(琢磨)하는 공(功)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이끌어주면서 애호의 정을 두는 것은 좋으나 과실을 감추고 잘못을 꾸며주는 습관을 들여서는 안 되며, 서로 탁마하면서 오직 좋은 것을 취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좋으나 처음부터 배척하고 거절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무릇 예나 지금이나 학문이 같으면 어울리고 다르면 공격하는 자는 단지 학문함에 있어 스스로가 초라하고 치우친 점만을 보여줄 뿐, 절대 긍정이나 절대 부정을 넘어서는 넓은 아량은 가지고 있지 못한다. 


학문의 본원(本源)을 천인(天人)의 경상(經常)*에 두어 위배하거나 넘어설 수 없게 한다면, 남이 공격한다 해서 근심할 것이 없고 남이 편든다고 해서 기쁠 것이 없다. 


그러나 세운 바의 본원을 허무하고 괴탄(怪誕)한 데에 두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여 그 편들어옴을 기뻐하는 것은 여러 사람의 힘으로 옳은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며, 그 달리하는 것에 노하는 것은 늘 훼멸(毁蔑)을 두려워함이 자못 많기 때문이다. 이는 눈앞의 훼예(毁譽)의 다과(多寡)로 학문을 삼는 것이니, 고금을 관통하는 불변의 운화(運化)로 학문을 삼는 것이 아니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 '같으면 어울리고 다르면 공격한다(黨同伐異)', 인정(人政) 제11권/교인문 4(敎人門四)-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김유성 (역) ┃ 1981 


※[옮긴이 주] 

1. 운화(運化)는 '활동운화'(活動運化)를 줄인 말로 기(氣)가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는 성질’을 뜻한다. 이때문에 천지만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최한기선생의 기철학에서 강조되는 운화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즉 활동운화(活動運化), 천인운화(天人運化), 통민운화(統民運化)이다. 운화에는 운화하는 주체에 따라 대기운화(大氣運化), 인기운화(人氣運化), 만물운화(萬物運化)로 분류한다. 또 인간의 삶의 양상에 따라 일신운화(一身運化), 교접운화(交接運化), 통민운화(統民運化), 대기운화(大氣運化)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 인도(人道)와 인간사를 포함하는 사회적 영역인 '통민운화'가 최한기 선생의 기(氣)사상의 중심에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선생은 주자학의 이(理)는 형체와 작용이 없고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관념론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기(氣)의 운화는 형체가 있고 활동운화하기 때문에 자연현상과 경험, 그리고 실험관찰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입증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기철학에 의거하여 학문이 가지고 있는 실용적 성격을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이끌어낸 셈이다. 이러한 최한기의 자연과학에 기초한 운화사상은 천지만물을 포함하여 사회사상, 윤리사상, 정치와 교육 등이 모두 운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최한기의 기사상은 자연과학적인 방법론과 개별적인 경험과 관찰에 입각한 구체적이고 단편적인 각론을 제시하기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어려운 것은 번역과정에서 쉬운 현대말로 풀어내지 못한 한자어라 생각된다.

2. 천인(天人)의 경상(經常): 자연과 사람에게 정해져 있는 하늘의 섭리와 인간의 도리(道理)로, 상황과 여건이 변하더라도 '그 기준이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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