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허위의 학문은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속일 뿐

실제 일로 세상을 속인다면 사람들이 다 믿지 않지만, 허위(虛僞)의 일로 세상을 속이면 아는 자는 믿지 않더라도 모르는 자는 믿으니, 성실의 학문은 세상을 속일 수 없으나 허위의 학문은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속일 뿐이다. 


깜깜하게 어두워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혼자만 안다고 하고, 황홀하여 준칙(準則)이 없는 것을 헛된 즐거움으로 삼으면, 사세가(일이나 형편, 상황을 헤아리는데 있어서) 반드시 옛사람을 인용(引用)하여 방금 사람의 일(현재의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형편은) 살피지 않고, 말마다 반드시 옛글을 일컬어(들먹이고  판단하여) 방금의 운화(세상의 다양한 상황들과 요소와 변수들이 현재의 일에 상호 간섭하고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것)를 알지 못한다. 


스스로 옛사람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마침내는 뒷사람(후세사람, 다른 사람)을 속이기에 이르니, 허근(虛根, 거짓의 뿌리)은 뽑기 어렵고 허원(虛源, 거짓의 근원)은 막기 어렵다. 매양 실사(實事, 실제하는 )의 행동을 말미암아 중심(中心)이 베푸는 것이 모두 허사(虛事)가 되어서 마음과 (실상이) 서로 어긋나니, 실지는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사람을 속이게 되어 버린다. 


한 일 두 일 자꾸 거듭하여 생애(生涯)를 마칠 때까지 그릇된 길로 빠짐을 면치 못하면서도 뉘우칠 줄 모르니, 아는 자는 이름을 도둑질한다고 비방하는 이가 많지만, 알지 못하는 자는 서로 전하여 신이(神異, 신기하고 특별하게 다름)라고 일컫는다.


상고(上古)의 성인(聖人)들이 이 세상을 깨우치고 백성을 깨우친 것은 세상이 순박했던 초기에 나온 것이다. 상도(常道, 변하지 않는 떳떳한 도리와 상식)와 이륜(彝倫,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떳떳한 도리)을 인도한 것이 실로 몽매함을 깨우쳐준 것이 많았다. 

 

그러나 중고(中古, 성인 이후의 옛 시대)의 이른바 세상을 깨우치고 백성을 깨우친다는 것은, 매양 옛사람보다도 높이 솟아나려 하여 남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찾고 또 범상(凡常, 흔히 있는 보통의 상태)과 다름이 있으려 하여 신통(神通, 신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모든 것을 통달함)을 자허(自許, 스스로 인정함)하니, 이것이 스스로 세상을 속이는 데로 빠지게 된 것이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세상을 속임(欺世)', 인정(人政) 제12권/교인문 5 (敎人門五)-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석 (역) | 1981


※허위(虛僞 )

1.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조작하는 일

2.얼핏 옳게 보이지만 잘못된 추리

3.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일을 타인에게 진실로 믿게 만드는 고의적 언행(다음사전)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