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하여

선인들의 문자(글, 저술, 저서, 첵 등등)에도 직접 본 것과 못 본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구분이 있다. 본 것과 아는 것에 대해 쓴 문자에도 오히려 후인들이 이해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모르거나 보지 못했던 문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류(事類, 사실적인 사례)를 널리 인용하고 전언(前言, 옛 사람이 한 )을 많이 원용하여 문자로써 앎을 삼고 언어로 본 것을 삼고 있다. 


후세의 초학들이 공부를 시작할 때 대부분 이러한 문자에 따르게 되므로 작자가 직접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연연하여 볼 수 있는 단서를 구하며, 작자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허욕과 망상이 여기에서부터 생기게 되고 견강 부회(牽強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를 능사로 생각하나, 사실을 따져보면 선인들의 모르는 것과 못 본 것이 후인(후세의 사람)의 앎을 가리고 보는 것을 가리게 된 것이다. 


첫째는 문자를 저술하는 데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이니, 밝힐 수 있는 실(實, 실제, 실상)을 얻고서도 글로 나타내지 않는 것도 진실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알지 못한 것을 알았다 하고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문자로 기록해 놓는 것은 바로 저 후인들을 해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문적을 연구하는 자(문자로 저술된 글을 연구하는 자)가 경계하여야 할 바이니, 만약 실천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지난날의 전철(前轍)을 반복하게 될 것이니, 어찌 절대로 없는 것에 의혹되고도 소득이 있기를 바랄 수가 있겠는가.


-최한기(崔漢綺1803-1879), '문자(文字)의 앎과 모름(文字知不知)', 『인정(人政)』 제11권/ 교인문 4(敎人門四)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주승택 최제숙 (공역) ┃ 1981


"진정한 앎이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논어 위정 17)-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 그리고 이야기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논고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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