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을 헤아리는 일에 대하여
무사시(無事時, 특별하고 긴박한 일이 없는 일상적인 상황)에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유사시(有事時)에 사람을 논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사전에 사람을 논하는 것이 사후에 사람을 논하는 것과 다름이 있다.
무사시에는 다만 용모와 신기(神氣)*로써 품격(品格)을 논설, 장래의 부귀를 들어 기쁘게 하기도 하고 혹은 기대를 걸게 하여 빈천을 면하도록 하며, 혹 격려하여 권장하기도 하고 혹 징계하는 뜻도 있다. 유사시에는 감당할 만한 재기(才器)와 거행할 수 있는 기량(氣量)으로써 원근과 내외(內外)에 방문하고 귀천과 상하에 조사하여, 평소의 심법 행사(心法行事, 마음씀씀이 그리고 실천하고 행하여 드러난 일)와 인물 교접(人物交接, 사람을 대하고 사귀는 태도)을 근거로 삼고, 용모의 귀천 호오(貴賤好惡)와 사기 언론(辭氣言論, 말 또는 글을 표현하는 얼굴의 기색)을 참증(參證, 참고할만한 증거)으로 삼는다.
사전에 사람을 헤아리는 데는 직임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주밀하게 헤아리고, 참험(參驗, 참고하여 살피고 조사함)해 들은 것이 합당한지를 마음속에 결정하여 시종 변개(變改, 바꾸어 고침)함이 없으면, 저절로 피차가 성신(誠信, 성실하고 믿음이 있음)하여 사업이 성취되기를 기약할 수 있으니, 어찌 남이나 나나 함께 영화롭지 않겠는가?
사후에 사람을 헤아리는 데는 일이 이루어지면 공을 남에게 양보하고, 일이 실패하면 허물을 자기에게 돌린다. 그 의심하지 않을 것을 의심하면 시기하는 마음을 면하지 못하고 그 부족함을 도와 주면 자못 후일의 경계에 절실하게 되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향배(向背)하게 하는 것은 초두의 교접(사귐, 인간관계)보다 더 심함이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감복하게 하는 것은 종말의 선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면상(面相)이 배상(背相, 드러나지 않은 형상, 즉 뒷모습, 이면)만 못하고 배상이 심상(心相, 마음씀씀이로 드러난 것)만 못하다." 하였으나 내가 생각하건대, 심상(心相)은 오히려 미진한 데가 있으므로 '심상이 행사(行事, 실제로 행하여 이루어진 일)의 상(相)만 못하다.'라고 하겠다.
면상(面相)의 길흉은 마침내는 행사에 나타나고, 배상의 길흉도 행사에 나타나고, 심상의 길흉도 반드시 행사에 나타나니, 행사를 버리고서 사람의 상을 헤아리고자 하는 것은 곧 마감하지 않은 문기(文記)와 같은 것이다.
전일의 행사는 곧 이미 징험한 상이고, 오늘날의 행사는 곧 바야흐로 시험하고 있는 상이고, 장래의 행사는 징험을 기다리는 상이 된다. 이 세 상(相) 중에 그 두 상을 알면, 그 나머지 한 상은 사례를 견주어 헤아릴 수 있다.
앞을 미루어서 뒤를 헤아리는 데는 변통하는 방법이 있고, 이것을 들어 저것을 밝히는 데는 손을 쓰는 방법이 있다. 면상ㆍ배상ㆍ심상은 다 행사의 상에서 참험(參驗)한다. 면상은 인거(引據, 인용의 근거)하는 단서가 있고, 배상은 정명(訂明 바로잡아 밝힘)하는 단서가 있고, 심상은 지적(指的 지향하는 표준)하는 실지가 있으니 다 쓸 만한 상이 된다. 만약 행사를 참험하지 않으면, 비유컨대 사람이 보지 않는 방안에서 세상 일을 배포하는 것과 같다.
행사를 밝히지 않으면 세상 일의 선악(善惡)을 증거할 데가 없고, 행사를 말하지 않으면 일체의 길흉(吉凶)이 도무지 지표(指標)가 없게 되고, 행사를 돌보지 않고 하면 큰 일이나 작은 일,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이 일체 권징(勸懲,권선징악)이 없게 되며, 행사를 가리지 않고 하면 분수를 잃고 절도 넘기를 조금도 기탄없이 하게 되는 법이다. 행사가 없으면 공업(功業)을 이룰 수 없는 것이고, 행사를 그르치게 되면 한탄이 원근(遠近)에 미치게 마련이다.
천지는 하나의 대기(大氣)를 가지고 행사하매 만물이 운화(運化, 서로 통하고 조화를 이룸)되고, 제왕(帝王)은 정교(政敎, 정치와 교육)를 가지고 행사하매 만백성이 운화되는 것이니, 천도(天道)와 인도가 행사를 버리고서 무엇을 하겠는가?
공과(功過)에 따라 출척(黜陟,못된 사람을 내쫓고 착한 사람을 올리어 씀)을 할 때도 행사를 보고서 배정하지 않는 적이 없고, 준수한 사람을 초빙하고 현명한 사람을 가릴 적에도 모두 행사를 보고서 불러 쓰게 되는 법이다. 오직 행사하지 않음을 귀중히 여기는 일은 악사(惡事)인 것이요, 불우하여 행사하지 못한 것은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최한기(崔漢綺1803-1879), '행사(行事)'부분 발췌, 인정(人政)제4권 / 측인문 4(測人門四)-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전문 (역) ┃ 1980
*옮긴이 주:신기(神氣)란, '기측체의'에서 혜강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신神이란 기氣의 알맹이다. 기란 신의 기본바탕으로 신기는 지각의 뿌리, 지각은 신기의 경험이다. 경험이 있어야 신기가 스스로 지각을 가진다.'"라고 정의한다. 즉 '신기'는 신비로운 어떤 기운이나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기는 일상에서 실감되는 것이다. 평소의 태도에서 지니고 있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능력으로 자연스레 바깥으로 우러나오는 어떤 기운이다. 혜강선생의 철학은 사실과 구체적인 경험을 들어 논하므로 되씹는다면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정작 어려운 것은 익숙치 않는 한자(漢字)다. 여담으로 현대철학과 비교하여 고대 철학이 쉽게 읽히는 이유는 일상의 질문을 일상의 이야기로 논리를 갖춰 풀어내기 때문이다. 예수, 석가,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성인(聖人)들의 가르침이 보편성과 함께 독보적으로 탁월한 이유는 일상의 질문을 일상의 언어와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이야기로 가르치기때문이다. 서양의 현대철학, 특히 현대유럽철학이 어렵고 난해한 이유는 고대철학 또는 성인(聖人)들에 의해 이미 설명된 일상의 질문을 지적능력이 탁월한 천재적인 사람들이 전문지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도무지 알수 없는 어려운 말로 난해하게 풀어내는 까닭이다. 수천년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다양한 일상의 논거들을 수없이 축적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에 번역은 더욱 난해하게 만드는 양념을 친다. 라틴어로부터 시작하여 몇 단계의 언어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번역된 언어에서 베껴낸 번역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말전달하기 게임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쉽게 짐작이 가능한 일이다. 앵무새가 인간의 말을 따라한다고해서 그 말을 이해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둔하고 어리석은 까닭에 개인적으로 해보는 못난 생각이 그렇다는 게다. 여튼 스마트하신 분들은 철학논리에 수학을 도입하여 형이상학을 설명하는 수리논리학(기호논리학)의 대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머리에 쥐가 나도록 어렵고 난해한 과정철학을 참고하시면 기(氣)를 이해하는데에 다소 교양스런 도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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