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앎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해야 지혜의 문을 열 수 있다
세상에서 늘 쓰는 것인데도 모르는 것을 밝히는 데에는 말이 어쩔 수 없이 많고 상세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평소에 행하는 것인데도 어두운 것을 깨우치는 데에는 가르침이 자연 간절하고 깊어야 한다.
정묵(靜黙, 아무말없이 조용하게 있음)을 지켜 남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남이 익히 아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기 때문이다. 겸양(謙讓,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배려하여 사양함)하여 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은 공(功)을 자랑하고 다투어 취하면 남의 시기를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잠자는 사람이 꿈꿀 것을 생각한 적이 없어도 꿈이 생기는 것은 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술마시는 사람이 취할 것을 생각한 적이 없어도 취하는 것은 술을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먹지 않는 사람이 허기질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허기가 오는 것은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도리를 어기는 사람이 노여움을 생각하지 않아도 노여움이 일어나는 것은 도리를 어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앎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해야 지혜의 문을 열 수 있다. 귀신의 설(이단사설, 검증이 불가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허황된 사설)이 신기(神氣)가 드러남에 따라 사라지고, 공허한 학문이 신기의 형질이 나타남에 따라 자취를 감출 것이니 대세가 근원으로 돌아가면 저절로 그 시기가 돌아온다. 당연히 모를 것을 모르는 것은 조금도 괴이할 것이 없으나,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은 운수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 그 모르는 것을 아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그 사람의 운화에 달려 있으나, 지혜의 언론을 많이 듣고 많이 보면 가리고 막혔던 길이 쉽게 열리게 된다.(이하생략)
-최한기(崔漢綺1803-1879),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기측체의(氣測體義)/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부분 발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정연탁 (역)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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