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물리(物理)에 순응하여 법칙을 따르는 자는 적고, 언제나 자기 소견을 가지고 조작하여 그림자를 참모습으로, 껍데기를 실질로 아는 자가 많다. 그리하여 얻은 것이 잃은 것을 보상하지 못하고 말이 고상하고 난해할수록 도(道)는 더욱 천해져 고집스럽게 변쟁(辯爭)해도 결론이 정해지지 않으니, 어찌 그 근본에 돌아가 그 도를 세우겠는가?" (최한기, 기측체의/추측록서)
본원(本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본원(本源, 사물이나 일따위의 근원)을 확실하게 알면 그것을 고금(옛날이나 지금이나)에 물어도 의심이 없고 천하에 증험해도 어긋남이 없으며, 이것을 구명(究明,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이나 원인 따위를 깊이 따지고 연구하여 밝힘)하면 선에 지나치는 것을 찾으려 해도 그 지나침을 볼 수 없고 또한 부족한 점을 찾으려 해도 그 부족함을 찾을 수 없다. 즐거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고 가르침 또한 저절로 밝아지게 되므로 비록 그것을 없애버리거나 말하지 않으려 한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한갓 학문의 이름만을 사모하는 사람은 자기의 본래 생각을 갖추고도 순종하는 낯빛을 짓거나 부질없이 남의 면전에서 맞장구치는 것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자신은 실지로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은 말에는 제멋대로 노하고, 실지로 본 것이 없으면서도 칭찬하는 말만 좋아한다.
이런 자에 있어서 그래도 취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이고, 징계할 것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의심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학(敎學)의 좋고 나쁨은 오로지 본원을 알았느냐 몰랐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각기 다름
사람의 사람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資稟 자품)에는 맑음,탁함,어두움,밝음(淸濁昏明)의 네 가지가 있고, 도량(度量)과 일을 처리하는 능력 혹은 재주(局量,국량)에는 큼, 작음, 얕음, 깊음(大小淺深, 대소천심)이 있다. 따라서 가르침이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 자품(資稟)과 사람의 도량과 재능(器局,혹은 氣局 기국)에 따라 각각 다르게 된다.
품기(稟氣)가 청(淸)한 사람으로 국량이 크면 심오하고 마음이 상쾌히 밝아지며 사물의 이치에 다다를 수 있는 가르침이 들어가고, 국량이 작으면 규모(規模) 있고 정결한 가르침이 들어가며, 국량이 얄팍하면 겉핥기의 허망한 가르침이 들어가고 국량이 깊으면 묵중하고 두루 통하는 가르침이 들어간다.
품기가 탁(濁)한 사람으로 국량이 크면 넓고 진실한 가르침이 들어가고 국량이 작으면 미세한 일을 하는 가르침이 들어가며, 국량이 얄팍하면 자기 입맛에 맞는 편리하고 조잡한 가르침이 들어가고 국량이 깊으면 근저(根柢)가 질적으로 다스림이 필요한 가르침이 들어간다.
품기가 어두운[昏] 사람으로 국량이 크면 한도를 넘어서는 허탄(虛誕)한 가르침이 들어가고 국량이 작으면 면전에서 미혹시키는 가르침이 들어가며, 국량이 얄팍하면 잠깐 동안 기만(欺懣)하는 가르침이 들어가고 기국이 깊으면 논점을 벗어나게 하는 무익한 가르침이 들어간다.
품기가 밝은[明] 사람으로 국량이 크면 천인운화의 가르침이 들어가고 국량이 작으면 만물을 시험(試驗)하는 가르침이 들어가며, 국량이 얄팍하면 편리에 따라 조별(條別)된 가르침이 들어가고 국량이 깊으면 심오하게 구해(究解)하는 가르침이 들어간다.
이처럼 천품을 처음 타고날 때 이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우열이 갖추어져 있는 것인데, 기국(氣局, 재주와 지혜, 도량)이 적당하면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그렇지 못하면 부지런히 가르쳐도 필경은 대충 대충 넘겨버리게 된다.(참조: 번역문에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옛 한자말이 상당히 많아서 개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을 옮기면서 일부분만 원문의 뜻을 훼손치 않는 범위에서 약간 풀어서 옮겼다)
-최한기(崔漢綺1803-1879), 인정(人政) 제9권/ 교인문 2(敎人門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주승택 최제숙 (공역) ┃ 1981
"사람이 걱정하는 바는 병이 많다는 것이고 의사가 걱정하는 것은 치료법이 적다는 점이다. 때문에 병에는 6가지 불치의 병이 있다. 그 첫째가 교만방자하여 도리(道理)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자기 몸을 경시하고 재물을 중시하는 것이다. 셋째는 의식(衣食)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일이다. 넷째는 음양이 오장 가운데에 함께 있어 혈기가 안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몸이 쇠약해 약을 복용할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무당만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이 여섯째 불치병이다." -사마천의 사기, 편작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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