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의 도리(人道)를 모른다면 사람을 헤아릴 수 없다
인모(人貌)ㆍ인기(人氣)ㆍ인심(人心)ㆍ인사(人事)를 통틀어 인도(人道)라 한다. 용모가 비록 귀하게 생겼으나 인도를 모르면 참으로 귀한 용모가 아니며, 품기(稟氣)가 비록 좋으나 인도를 행하지 않으면 참으로 좋은 품기가 아니며, 심법(心法)이 비록 선하나 인도에 통창(通暢, 조리가 밝아 환함)하지 못하면 심법이 선하다고 하기에 부족하며, 행사(行事)가 비록 아름다우나 인도가 갖추어지지 못했으면 어떻게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는가?
용모ㆍ품기ㆍ심법ㆍ행사가 혹시 부족하고 빠진 점이 있더라도 여유가 있는 점은 남에게 보태주고 부족한 점은 남에게 의뢰하면서 인도를 밝히고 인도를 행하여 남이 그의 결함을 모르게 해야 한다. 더군다나 결함이 없을 수 없는 보통 사람이겠는가?
귀(貴, 귀할 귀)는 인도의 귀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으며 천(賤, 천할 천)은 인도를 잃는 천보다 더 천한 것이 없다. 인도 이외에 무엇으로 사람을 논하겠는가?
혹 전일에 모르던 사람을 대하여 그의 인도를 알고 인도를 행하는지를 알고 싶으나 마침 탐문(探聞)할 길이 없을 경우, 먼저 상대의 용모와 기색을 보아 그 사람의 귀천ㆍ길흉(吉凶)을 판단한 다음 심법(心法)과 행사를 살펴 그의 선악(善惡)ㆍ순역(順逆, 순리와 역리)을 보아 그의 추지를 알아 볼 것이니, 이것이 모두 그 사람의 인도가 조만간 성취될 것인가의 여부를 채탐(採探, 모르는 것을 더듬어 살피고 찾아감)하는 방법이다.
만일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상보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장차 무엇으로 표준을 삼을 것이며 무엇으로 어긋나고 부합하는가를 삼겠는가?('相測以人道爲主사람을 보고 헤아리는 것은 인도를 주로 한다'/측인문 6)
사람이면서 사람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남의 선을 헤아려 자기의 선을 삼으며, 남의 악을 헤아려 자기의 징계를 삼아야 한다. 많은 사람 가운데 인도를 세우고 운화(運化)의 기(氣)에 인도를 순종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우주(宇宙)의 변함없는 인도이다. 이른바 인도란 하늘과 사람의 범위 가운데서 사람이 항상 행하여야 할 도리로, 위로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만약 한 고장에서 한때 본 것을 가지고 인도를 삼으면 편벽된 습속에 빠짐을 면하기 어렵고, 또 한 나라에서 여러 세대 동안 행하여진 것을 가지고 인도를 삼으면 어찌 풍기(風氣)의 속되고 응체(凝滯, 내려가지 않고 막하거나 걸림)된 것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이 우주 안의 모든 사람은 용모가 대략은 같지만 차이가 있다. 각국(各國)의 문견을 통찰(統察)하면, 흑인(黑人)ㆍ백인(白人)과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섞여 있고, 코가 크고 눈이 우묵한 사람, 털이 붉은 사람, 눈동자가 푸른 사람 등을 모두 눈으로 볼 수 있으니, 그런 후에야 천하에 크게 다른 용모를 가진 사람은 없음을 알게 된다.
만국(萬國)의 치란과 연혁을 살펴보면, 어진 사람을 얻어 쓰면 나라가 흥성하고 간사하고 아첨을 좋아한 사람을 쓰면 쇠망하며, 문교(文敎)의 성쇠에 따라 시비의 당(黨)이 이루어지고 전쟁의 구축(驅逐)으로 인해 강약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재색을 탐내는 것은 어느 곳이나 모두 같고, 의식에 골몰하는 생업(生業)은 모두가 동일하다. 이 모두가 신기(神氣)에 실려 있으므로 천하 생민(生民)의 도리란 자연 그 범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알아 인도가 크게 밝아지면 기(氣)에 징험해도 어김이 없고 일에 질정하여도 모두 반응이 있으며, 이런 것을 들어 사람을 헤아리면 사람의 도가 그 가운데 있다.
스스로 자기가 인도를 행한 후에 인도로 사람을 헤아리면, 그 사람이 인도를 행하고 인도를 알았는지를 알 수가 있으며, 또 그 사람이 인도를 행하지 않고 인도를 알지 못하는지의 여부도 알 수 있다. 귀천(貴賤)과 길흉(吉凶)을 어찌 다만 용모가 아름답고 추한 것으로 분별하겠는가? 인도를 따르는가 거스르는가로써 귀천과 길흉을 삼아야 한다.('統察人道 인도를 통찰함'/측인문 6)
예로부터 인재를 얻어 창성한 사람은 처음에는 대략 그 인재가 현명한 재국을 지녔다는 것을 짐작했을 뿐이지, 어찌 종말의 성패와 이해까지 역력히 알고 그런 것이겠는가? 사람을 잘못 써서 망한 사람도 처음 간사한 자를 충신(忠信)하다고 알고 충신한 사람을 쓸모 없는 사람이라 했을 뿐, 종말에 가서 여지없이 멸망할 것은 역시 정확히 알지 못한 것이다.
소견이 심원하면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역시 심원하나, 소견이 천단하면 사람을 헤아리는 것 역시 천단한데, 이렇게 되면 설령 패망하지는 않더라도 어찌 진취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심원하다는 것이 어찌 그 사람의 폐부(肺腑)를 꿰뚫어보아 후세까지 밝게 안다는 것이겠는가?
그 사람의 지난 행사가 인도에 맞는 것을 미루어 그 사람 장래의 처사가 인도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헤아리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천단한 사람은 자신에 있는 인도와 운화(運化)의 교접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을 인도로 헤아리지 않고 오직 면전의 아첨만 취할 뿐 장래의 패망은 생각하지 못한다.
대저 인도란 인의(仁義)로써 민중을 화협(和協)하게 하여 생도(生道)를 공제(共濟)해 나가는 것이다. 한 가정에 인도가 행하여지면 한 가정이 편안하고, 한 나라에 인도가 행하여지면 한 나라가 다스려지며, 천하에 인도를 행하면 천하가 평화로워진다. 자신이 행하여 천하를 교화(敎化)하는 것은 성인의 도이고, 자신이 밝혀서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것은 현인의 도이다.( '人道得失인도의 득실'/측인문 6)
서책(書冊, 서적, 책)에 실린 사람의 우열을 헤아리는 것은 그 사람의 행실에 달렸고 그의 용모에 달린 것이 아니며, 그 사람의 만난 운화(運化)에 달렸고 후세 사람의 논단(論斷)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이 오늘날 사람을 논하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또 지금 사람이 지금 사람을 논하는 데도 그 용모를 보고 논하는 자는 겨우 억만에 한 사람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들의 행사(行事)를 듣고 알아서 우열을 판단한다.
인도에 손익 여부를 따져 보아서, 그 사람의 행한 일이 천하의 인도에 보면 천하 사람의 칭송을 듣고, 한 나라의 인도에 도움이 되면 그 나라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한 가정 인도에 보탬이 되면 한 가족의 혜택이 된다. 인도에 해를 끼치는 경우도 가정과 나라와 천하의 구분이 있다. 행사만을 논하고 인도의 표준을 두지 않으면 손익 우열을 무엇으로 판별하며, 포폄(褒貶, 칭찬과 나무람, 시비선악을 가려 평함)ㆍ권징(勸懲 권선징악,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을 무엇에 의거해서 하겠는가?('捨容貌準人道 용모를 버리고 인도를 표준으로 삼는다'/측인문 6)
-최한기(崔漢綺1803-1879), '인도(人道)'부분 발췌, 인정(人政)제6권 / 측인문 6(測人門六)-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조수익 (역)┃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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