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옳고 그름은 바른데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性)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미룸과 헤아림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다.


그러므로 미룸이 올바르면 헤아림에 방법이 생기고 미룸이 올바르지 못하면 헤아림도 올바르지 못하다. 올바름을 잃은 곳에서는 미룸을 바꾸어 헤아림을 고치고 올바름을 얻는 곳에서는 원위(源委 근본과 말단)를 밝혀서 중정(中正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치우침이 없이 곧고 올바름)의 표준을 세울 것이다. 이에 지나치면 허망(虛妄, 거짓이 많고 근거가 없이 허무한 상태)에 돌아가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비색(鄙塞, 속되고 천한 상태에 갇혀 버림)에 빠진다.(☞추측록 서)


악을 헤아림(測惡)


악한 말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품기(稟氣, 타고난 천성에서 나오는 기운, 기질)가 거칠고 탁하며 교유(交遊 사귐과 서로 왕래하며 나누는 교제를 아울러 이르는 말)가 번잡한 때문인데, 이런 사람은 세속의 악한 말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하며 선언과 선행은 오히려 비방하고 헐뜯기를 마치 선한 사람이 악을 버리듯이 한다. 


측인(測人 본성을 따라 익힌 것으로 사람을 바르게 재는 일)하는 자가 자신의 정명(淨明)한 신기(神氣)로 그 거칠고 탁한 기를 헤아려 안정시키면, 아무 일 없을 때에는 그 패잡(悖雜, 잡다한 것이 마구 어지럽게 뒤섞여 있음)한 행태(行態)가 조금 드물게 되지만, 만약 일을 당하여 말할 때에는 반드시 그 거칠고 탁한 기가 움직이게 된다. 그 때에 책망이나 권계(勸戒, 타일러 훈계함)하는 말을 들으면, 그 거칠고 탁한 기가 충발(衝發, 치밀어 올라 터져 나옴)하여 모든 찌꺼기까지 남김 없이 일어나는데, 만약 거기에다 같은 무리들의 동조하는 말이 따르면 마침내 흉패(凶悖 도리에 어그러진 흉악한 일)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 역시 남과 힘을 합쳐서 이루는 것이고 한 사람이 혼자 악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도당들이 격동시켜 함께 악을 이루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의 소위로만 책임을 지우면 언제나 실상에 지나치게 악인으로 만드는 탄식이 있게 된다.


의심과 믿음의 부당한 것(疑信不當)


측인함에 있어 엄히 조심할 것이 있으니, 의심하지 않을 사람을 의심하고 믿지 못할 사람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전에 들은 기괴(奇怪)한 말을 자기 혼자만 아는 기밀로 자부한 데서 생기는 것이니, 이런 자들은 의거하는 것이 허무한 방술(方術 방법과 기술)이고 찾는 것이 음사(陰邪, 드러내지 않는 음흉하고 사악함)한 묘맥(苗脈, 곧 드러날 일의 실마리, 한줄기 단서)이다. 


광명(光明)한 대업(大業)과 경상(經常)의 인도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무너지니, 사람을 속여서 물건을 취하고 사람을 암흑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이들의 능사이다.


재색(財色)ㆍ과환(科宦, 과거에 급제한 벼슬아치, 즉 사회적으로 출세하여 성공한 사람)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추구하여 서로 해치고 시기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을 경영하는 처음에는 남에게 절실하게 신용을 보이다가도 허점이 탄로되면, 의심하지 않을 사람도 의심하여 자연 믿음과 의심이 바르지 못하게 되고, 남도 역시 바르지 못한 믿음과 의심으로 대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근심이 얽히고 설켜 고뇌가 자심(滋甚 더욱 심함)하고, 광명한 세계를 보지 못하게 된다.


시비(是非)는 바른 데로 돌아감(是非歸正)


시비는 바른 데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 말단(末,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인부분)을 잡고서 분운(紛紜 여러 사람의 의논(議論)이 일치하지 아니하고 이러니 저러니 하여 시끄럽고 떠들썩함.)하게 증거하면 옳은 것(是)이 그른 것(非)이 되기도 하고 그른 것이 옳은 것이 되기도 하나, 그 근본(本)을 들어서 만사를 표준하면 옳은 것은 저대로 옳은 것이 되고 그른 것은 저대로 그른 것이 될 것이다.


이른바 말단(末)이란, 고금 사람의 언행(言行)의 지나간 자취요 문자(文字)의 기재(記載, 문서로 기록된 것)이다. 널리 조사하고 증거대어 논박(論駁)하는 데에 뜻을 두면, 어찌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그른 것이 옳은 것이 될 뿐이랴. 또한 어찌 금(金)이 목(木)이 되고 목(木)이 금도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른바 근본이란, 천지 인물의 기(氣)로 활동 운화(運化 무형의 기가 활동하여 유형의 형태로 드러나는 )의 바탕이 되므로 온갖 계책으로 벗어나려 하여도 되지 못하고 또 만단(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저해하여도 되지 못한다. 이에 합치하면 옳은 것이 되고 이에 어그러지면 그른 것이 된다.


허물을 알면 고친다(知過則改)


자기의 허물을 아는 것이 남의 착한 일을 듣는 것보다 나으므로, 오직 허물을 아는 것이 절실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하고, 허물을 고치는 것이 빠르지 못한 것은 걱정할 것 없다.


다른 사람의 착한 행실을 듣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착한 데로 옮겨가는 방도는 내 잘못을 알아서 고치는 것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전일의 잘못에 대하여 그 어그러진 원인을 헤아려서 잊지 않으면, 뒤에 다시 그 일을 당하여 전의 일을 고치는 것은 스스로 그만둘 수 없게 된다. 만약에 어그러진 원인이 무엇인지 혼미(昏迷)하면, 종신토록 행하더라도 그 바른 것을 얻을 수 없다.


-최한기(崔漢綺1803-1879), 『기측체의(氣測體義)/ 추측록(推測錄)』 중에서 발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