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사람을 아는 것과 헤아리는 것은 다르다
지인(知人, 사람을 아는 것)과 측인(測人, 사람을 헤아리는 것)은 다르다
함께 일을 해 봐야만 비로소 사람을 알 수 있고 일을 함께 하기 전에는 단지 사람을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일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떠함을 알고 일을 한 뒤에 그 징험(徵驗)이 과연 어김이 없으면, 이것을 일러 사람을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끝내 증험한 것이 없는데도 사람을 알았다고 한다면, 누군들 사람을 알지 못하겠는가.
일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헤아리는 것은, 매양 그 사람이 이미 끝낸 일을 인하여 이 일을 미루는 것이다. 혹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운화(運化)의 기회를 미루어 종말의 돌아갈 형세를 미리 재보는 것은 추후의 증험을 바로 기필할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통(一統,다양한 여러 요소들을 서로 연관되도록 맞춰 하나로 통합함)의 헤아림
자기의 용모는 비록 스스로 보기 어렵지만, 자기의 행사(行事)는 스스로 알 수 있다. 먼저 자기에 대한 헤아림에 얻음이 있어야만 남을 헤아릴 수 있다. 자기의 행사를 공정한 마음으로 살피지 못하면 편폐(偏蔽, 편견에 빠져 치우치고 막힘)에 빠지기 쉽고, 남을 헤아리는 데도 애증(愛憎)에 가려짐을 면하기 어렵다. 나와 남을 논할 것 없이 뭇사람의 견해(見解)를 모아서 공론(公論)에 맞아야만 바른 헤아림이다. 헤아림은 마땅히 넓어야 하고 좁아서는 안 되며, 멀리까지 미치는 것이 귀하고 비근(卑近)한 헤아림은 귀한 것이 아니다.
제왕(帝王)에 있어서는 먼저 내 몸에 있는 것을 헤아려 이를 보필하는 신하에 추급(推及)하고, 재상(宰相)에 있어서는 먼저 내 몸에 있는 것을 헤아려 다음으로 백료(百僚)에 미치고 방백(方伯)·수령(守令)·서관(庶官)에까지 이른다. 만민(萬民)도 모두 헤아리는 여러 도구를 가지고 있고, 각각 헤아릴 수 있는 사물(事物)이 있다. 천만인(千萬人)이 있으면 천만인이 모두 헤아림이 있고, 억조민(億兆民)이 있으면 억조민이 모두 헤아림이 있다. 갑(甲)이 헤아리는 것을 을(乙)이 헤아리지 못하고, 병(丙)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혹 정(丁)이 쉽게 헤아리는 등 그 우열과 천심이 각각 여러 등급의 다름이 있다.
그러나 걔중에는 천기(天氣)·인도(人道)의 일통한 헤아림이 있으니, 이는 온 백성의 헤아림을 이끌어 그 극(極)을 세우고 온 백성의 헤아림을 분별하여 그 범위를 확충하는 것이다. 이 일통의 헤아림을 밝혀 미지의 헤아림을 유도하면 성현(聖賢)이 되지만, 일통의 헤아림을 알지 못하면 비록 한두 가지를 잘 헤아렸더라도 하류(下類)를 면치 못한다.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얕은 소견과 좁은 도량, 어리석은 문견과 천박한 식견을 가지고는 사람을 헤아릴 수 없고, 먼저 애증(愛憎)을 마음에 두고 고집을 일삼는 자는 사람을 헤아릴 수 없고, 옛 법에 집착(執着)하고 방술(方術)에 빠진 자는 사람을 헤아릴 수 없고, 자신을 믿어서 능력을 과시하며 말이 요사스럽고 허탄(虛誕)한 자는 사람을 헤아릴 수 없고, 조급한 마음과 혼미(昏迷)한 견해를 가지고는 사람을 헤아릴 수 없고, 일을 행함이 미숙하거나 얼굴을 접함이 오래지 않으면 사람을 헤아릴 수 없다.
사람을 헤아리기 어려운 이유
신기(神氣, 정신과 기운)가 통창(앞뒤가 맞고 분명함)하고 경험이 넓은 사람, 애증을 마음에 두지 않고 경우에 따라 변통하는 사람, 옛 법을 손익하고 견해(見解)가 운화에 통달한 사람, 능력을 과시하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말이 경상(經常, 변함없이 일정함)한 사람, 총명이 겸인(兼人, 보통사람 2배의 몫을 하는 사람)하고 충서(忠恕,자기에게 충실하여 정성을 다하며, 그러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용서함)에 모두 밝은 사람, 그 행사를 중시하고 용태(容態)를 곁들여 참작하는 사람, 그 대체의 범위를 들고 사소하게 따지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사람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모두 겸한 사람이 드무니, 이것이 사람을 헤아리기 어려운 까닭이다.
헤아릴 수 없는 것
분수(分數)가 없고 준적(準的)이 없는 것은 처사(處事)의 선악을 측량할 수 없다(기준이 없는 것 즉 드러내거나 표현되지 않은 것은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 자기 습관에 매여서 인물(人物)에 해를 끼침을 돌아보지 않고 욕심에 끌리어 윤상(倫常,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을 침범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면, 제 이익만을 위한 것이 마침내 자신을 해치게 되고, 이른바 일을 이루었다는 것도 모두 미진(未盡, 결말을 맺지 못함)함이 많다. 소경은 간혹 문을 바로 찾을 때가 있지만, 귀머거리야 어찌 선한 말을 알아듣겠는가? 측인하는 도리는 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헤아려야 한다.
내외가 다른 사람은 헤아림에 조심해야 한다
상지(上知, 지혜가 뛰어남)와 하우(下愚, 매우 어리석음)는 겉과 속이 서로 같은 사람이 많고 내외(겉과 속)가 다른 사람은 적다. 오직 인의(仁義)를 알지 못하고 조금의 지교(知巧)가 있는 자가 반드시 내외가 같지 않은 예가 많다. 겉과 속이 서로 같은 사람은 겉을 보아서 속을 헤아리고 속을 탐지하여 겉을 헤아릴 수 있으니, 이는 상보는 데 준적(準的, 기준과 원칙, 근거)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외가 같지 않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안으로는 기휘(忌諱,꺼려하여 피하거나 숨김)하면서 밖으로 수식(修飾, 겉치장)을 힘쓰는지라, 자연 성실치 않은 기운이 있으면서도 겉으로 충돌하여 드러나는 형세가 없어, 밖으로는 충정(忠正, 한결같이 성실하고 바름)한 것 같지만 안은 실지로 간사하고 궤휼(詭譎, 교묘하게 속임)하다. 그러나 동정(動靜,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일체의 행위)과 사색(辭色, 말과 얼굴빛)에 그 기미(機微, 느낌이나 상황으로 알아챔)가 드러나는 것을 숨기기는 어려우니, 사람을 관찰하는 자는 내외가 같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신을 많이 써야 한다.
예로부터 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속임수를 당한 것은 모두 내외가 같지 않은 사람 때문이다.
직접 대면하여 보지 못한 사람을 헤아림
대면(對面)하여 상인(相人, 관상)하는 술(術)을 미루어 그 보지 못한 사람을 헤아려 상보는 방법은, 다만 귀로 전해 들은 말과 종이로 전해지는 문사(文辭)에 의해 헤아리는 것이다. 진실로 잘 탐지하는 재능만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기상(氣像)을 상상할 수 있다. 말을 전하는 사람이 훼방과 칭찬을 곁들이거나 자기의 뜻을 보태지 않고 그 사람의 참 면목(面目)을 전달한다면, 직접 대하여 보는 것과 다름 없이 7~8분을 헤아려 알 수 있다. 만약 전하는 사람의 식견의 분수와 상인(相人)의 지교(知巧, 아는 바를 풀어내는 기교)가 혼륜(渾淪, 분별이 뚜렷하지 않고 무질서하여 일관성이 없음)함을 면치 못하면 그 말은 대부분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지은 문사(글과 문장)는 그가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얻은 것에서 나온 것이므로 기상의 호매(씩씩하고 호탕함) ·잔약(갸날프고 약함) ·안상(安詳,성격이나 성질이 차분하고 세심함) ·방탄(放誕, 터무니없고 허튼소리)과 식량(識量, 아는 정도)의 대소 ·천심(마음과 생각의 깊이)·정추(精麤, 섬세함과 거침)·혼명(탁함과 맑음)이 모두 드러나고, 그 정신(精神)의 진수가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에, 그를 재어볼 방법으로는 이것이 도리어 잠시 얼굴만 접해 보는 것보다 낫다. 이것을 가지고 전해들은 말과 합해 참작했다가 그 사람을 대하여 형상을 보고 기색을 살펴서 문견(聞見, 보고 들어서 아는 지식)과 부합되는 것이 있으면, 이는 말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두 그 진실을 얻어 소견이 더욱 밝아질 것이니, 미리 들어 알아두지 못하다가 졸지에 그 사람을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혹 들어서 안 기상이 실제로 본 기상과 어긋나 징험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혹 들어서 안 것에 이끌려 보아서 아는 것에 착오가 생긴 것도 있고, 또는 들어서 안 것이 잘못된 것을 보아서 아는 것으로 바로잡는 것도 있다. 그러나 들어서 아는 것은 단지 그 형상을 상상해 보는 것이나 보아서 아는 것은 진실한 것이다.
또 혹 측인하는 자의 보고 듣는 것에 우열(優劣)이 있어, 보는 것은 뛰어나나 듣는 것은 떨어지기도 하고 보는 것은 떨어지나 듣는 것은 뛰어나기도 하여 각각의 장점이 있으니, 보고 들은 것을 상호 참작한다면 착오를 가져오는 일이 극히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직접 보고서 측인하려 한다면 일생(一生)을 통하여 수십 수백 명 내지 천명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접하는 사람은 문견을 가지고 내 문견을 널리 증험하고 이 사람이 전하는 것으로 저 사람이 전하는 것을 증험하고 가까운 데 사람이 전하는 것으로 먼 데 사람이 전하는 것을 증험하여, 들어서 아는 술(術)을 점점 미루어 확충한다면 천만억 사람까지 통달할 수 있고 천하 사람의 대체(大體)의 범위도 모두 들어 알게 된다.
일미(溢美, 과장된 아름다움)·일악(溢惡, 과장된 악)을 헤아림
다른 사람이 측인한 말을 듣고 남에게 전파하는 것에는 자연 과장된 선과 과장된 악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두 번 옮기고 세 번 옮기면 실상이 없는 비난과 칭찬까지 있게 된다. 직접 사람을 대하여 그의 용모 사기(辭氣)와 행사 운화를 헤아려 과불급(過不及)을 참작하고 귀천을 분별하면, 견해가 진실하여 헛됨이 없지만, 남이 전해주는 말만 듣는 자는 그 말을 들은 뒤에 그 평판하는 말을 미루어 자기 나름대로 윤색하는 능력이 있는지라, 선하다 여겨지면 칭찬하는 말로만 듣고 악한 점은 숨기며 악하다고 생각되면 비방하는 말로만 듣고 선한 점을 숨기는 까닭에, 자연 선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악을 지나치게 비방하게 된다.
이렇게 두번 세번 전파됨에 이르러서는 말을 보태고 날개를 붙여 허탄한 경지(境地)로 굴러 들어가, 비방이 비방할 것 없는 것에까지 이르고 칭찬이 칭찬할 것 없는 것에까지 이르게 되므로 여기에서 전하는 말을 듣는 데는 마땅히 살피고 신중히 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말을 전하는 자의 지각(知覺)의 분수를 참작하고 또 다른 두세 사람의 다르게 전하는 말을 모아, 허를 버리고 실을 취하며 대체를 취하고 자잘한 것을 버리면, 이는 반이 넘는 추측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측인하는 것이 눈으로 본 경우는 적고 탐문(探聞)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서로 비교 참작해야 한다.
남에게 전해들은 것으로 측인할 경우에 그 정요(精要)를 찾아, 과장된 칭찬과 과장된 비판에서 그 실지 선악을 구별하여 알고 실상이 없는 칭찬과 비방 속에서 실지 훼방할 것이 없고 칭찬할 것이 없음을 알아 낸다면 측인하는 도에 널리 통달했다고 할 수 있다.
굳게 미혹된 사람을 헤아림
무릇 일에 탐혹(貪惑, 탐욕에 치우침)의 생각이 있는 자는 주통(周通, 두루 통함)의 도량이 없고 편벽된 소견이 있으며, 천루(賤陋, 인품이 천하고 졸렬함)한 기운이 많으면 점점 주색(酒色)·잡기(雜技)에 끌려 들어 매몰(埋沒, 푹 빠져버림)되기에 이르므로 그 기운이 쇠하고 힘이 다해야만 그만 두게 된다.
편벽된 지혜가 있는 자는 방술(方術, 처세술)의 외도(外道)를 탐구하고 부회(억지로 끌어다 대어 끼어 맞춤)하여 재앙을 피하고 복을 구하려다가 마침내 실효(實效)가 없음을 알고야 그만 두게 된다.
초일(超逸, 원칙과 기준이 없어 경계를 벗어남)한 기운이 있는 자는 불도(佛道)·선학(仙學)에 종사하여 허영(虛影) 속에서 깨달음을 찾다가 상법(相法)이 다 없어져도 끝내 인간의 정도(正道)로 돌아오지 못하고 만다.
재물을 탐하는 기운이 있는 자는 많은 것을 탐하고 얻기에만 힘쓸 뿐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하여, 많을수록 더욱 부족하고 여유가 있을수록 더욱 적게 여기다가 살아서는 남에게 욕먹는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부족한 귀신이 된다.
어찌 이 네 가지뿐이랴. 선악·길흉·유용(有用)·무용(無用)의 여러 가지 일에 한번 침혹(沈惑, 어떤 일에 치우치고 집착하여 빠져버림)하면 절도(節度)에 넘쳐도 깨닫지 못하고 돌아올 줄 모르니, 이것이 모두 탐혹이라는 것으로 모두 병들고 미친 사람이다. 그 미혹된 가운데 혹 사람이 알기 어려운 것을 알기도 하고 사람이 통하기 어려운 것을 통하기도 하나 이는 모두 편벽된 소견으로 헤아린 것이므로 이것을 가지고 그 밖의 일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알았다는 것과 통했다는 것은 속임을 당하는 자가 빠지기 쉬운 것이니, 측인하는 자는 이것을 깊이 살펴야 한다.
-최한기(崔漢綺1803-1879), 인정(人政) 제1권/ 측인문 1(測人門一) / 총론(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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