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좋은 문장은 흉내를 낸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최한기

경험과 추측으로 천인(天人)의 대도(大道)와 사물(事物)의 소도(小道)를 알았더라도 언어(言語)로써 표현(表現)하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찌 들을 수 있으며, 문장으로 저술하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옛 문장은 도(道)를 내포(內包)시켜 문사(文辭)를 이루고 바탕[質]을 말미암아 문채를 이루었는데, 중고(中古)의 문장은 남의 글귀를 주워모아 허영(虛影)을 얽고 고금을 종횡하며 정령(精靈, 본질적인 것, 즉 핵심)을 휘날리지만, 문채를 내려다가 도리어 덕(德)을 상실하고 혁신(革新)에만 치우쳐 실다움이 없게 되었다.

후세의 문장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하늘의 문장과 땅의 문장과 인물의 문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운화기(運化氣, 천하만물이 서로 반응하고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기운)를 얻어 가슴속에 살아 움직이는 운화의 문기(文氣)를 길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입에서 나오는 언사(言辭)는 모두 영기(靈氣)를 드러내어, 꿈틀꿈틀한 문체(文體)를 이루고 온갖 조화(造化)를 빚어내게 된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신기(神氣)를 감동시켜 쉽게 공감(共感)을 얻게 되니, 이것은 곧 문장에 애쓰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훌륭한 문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이 진취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다만 기화(氣化)가 양성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옮긴이 주:  이 문장에서 말하는 기화(氣化)의 의미는 맥락상, 밖으로부터 경험하고 익히고 축적한 것이 내면의 정신과 화합하여 조화를 이루어 참된 지성(知性)으로 변화하는 것을 뜻함) 그러니 문장이 어찌 억지로 되며 모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겠는가? (중략)

그러므로 무릇 문장이란 운화기에 연유하지 아니하여 운화와 어긋나게 되면, 비단 무력하고 신채(神彩)가 없어 볼 만한 문채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남의 심지(心志)를 혼란하게 하여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

공담(空談, 흠미나 호기심  또는 재미 위주의 가십성 이야기)의 문장이나 남을 욕하는 문장은 곧 우속(迂俗, 비뚤어지고 치우친 풍속)에서 문장이라고 일컫는 것이고, 과장(科場, 시험을 보는 곳)의 문장과 사곡(詞曲, 노래로 부를 수 있게 지은 가사)의 문장은 곧 시속이 숭상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편벽된 기를 익혀 쌓은 데서 나온 것이지 기를 말미암지 않고 이룬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이런 류의) 문장에만 빠져버리게 된다면, 어찌 문화의 대도(大道)를 모를 뿐이겠는가? 도리어 자못 스스로를 해치고 스스로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니, 자기의 평생을 그르치고 또 다른 사람까지 해칠 것이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 '문장(文章)', 인정(人政) 제8권 / 교인문 1(敎人門一)-

ⓒ 한국고전번역원 | 홍혁기 이광호 (공역)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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