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을 헤아리는데에 조심해야 할 것 / 최한기

바르지 못한 믿음과 부당한 의심

측인(測人, 사람을 살피고 헤아림)함에 있어 엄히 조심할 것이 있으니, 의심하지 않을 사람을 의심하고 믿지 못할 사람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전에 들은 기괴(奇怪)한 말을 자기 혼자만 아는 기밀로 자부한 데서 생기는 것이니, 이런 자들은 의거하는 것이 허무한 방술(方術, 방법과 기술)이고 찾는 것이 음사(陰邪, 음흉하고 사악함)한 묘맥(苗脈, 일의 실마리 또는 단서)이다. 광명(光明)한 대업(大業)과 경상(經常, 변함없이 일정함)의 인도(人道, 사람의 도리)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무너지니, 사람을 속여서 물건을 취하고 사람을 암흑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이들의 능사이다.


재색(財色재물과 여색)ㆍ과환(科宦, 거시험에 합격한 벼슬아치)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추구하여 서로 해치고 시기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을 경영하는 처음에는 남에게 절실하게 신용을 보이다가도 허점이 탄로되면, 의심하지 않을 사람도 의심하여 자연 믿음과 의심이 바르지 못하게 되고, 남도 역시 바르지 못한 믿음과 의심으로 대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근심이 얽히고 설켜 고뇌가 자심(滋甚, 점점 더 심해짐)하고, 광명한 세계를 보지 못하게 된다.


어진이를 좋아하고 시기하는 것을 헤아림


어진이를 좋아하고 선을 즐거워하는 것이 혹 성신(誠信, 참되고 성실함)에서 나오고 혹 면강(勉强, 억지로 하거나 시킴)에서 나오며, 어진이를 질투하고 능한 것을 미워하는 것이 혹 이해(利害)에서 나오고 혹 시기(猜忌)에서 나오는데, 천정(天定, 하늘이 정함)의 성품이야 어찌 이와 같은 선악의 나뉨이 있겠는가. 


동(東)으로 트고 서(西)로 트는 데서 취향(趨向)이 각기 달라지고, 도리에 따르고 도리를 어기는 데서 배양(培養, 인격, 사상, 능력등이 발전하도록 복돋우고 가르쳐 기름)이 달라진 때문이다. 어진이를 좋아하고 선을 즐거워하는 것이, 계발(啓發, 재능이나 정신 따위를 깨우쳐 열어 줌)과 개오(開悟, 지혜를 얻어 진리를 깨달음)에서 나온 것은 성신(誠信)이고, 심상(尋常, 대수롭지 않고 일반적임)과 습염(習染, 버릇이 습관이되어 고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온 것은 면강이다. 어진이를 투기하고 능한 것을 미워하는 것이 쟁탈(爭奪,서로 다투어 빼앗음)에서 나온 것은 이해(利害)때문이고 자기보다 나은 것을 미워하는 데서 나온 것은 시기(猜忌)하여 이기려는 것이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건 (가리지 않고 예사로) 하는 자는 민생에 유익한 것이 아니면 반드시 유해한 것이다. 백성에 유익한 자는 선인 현인의 무리가 되어, 반드시 그 등류를 추양(推讓, 남을 추천하고 자기는 사양함)하고 포장(褒獎, 칭찬하고 장려함)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쳐 큰 사업을 이루지만, 백성에게 해되는 자는 악인 흉인의 무리가 되어, 기회를 노리고 틈을 타서 심복을 맺어 인도(人道, 사람의 도리)를 허물어뜨린다.


선악의 승부가 곧 정교(政敎, 정치와 교육)의 치란(治亂, 잘 다스려짐과 어지럽고 혼란함)이 되고 풍속의 미악(美惡, 아름다움과 추함)이 된다. 한 사람의 신기(神氣)에는 이 두 가지 단서(端緖)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선(善)을 헤아릴 수도 있고 악도 헤아릴 수도 있다. 선(善)만을 헤아릴 줄 알고 악(惡)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완전한 측선(測善, 선을 살피고 헤아림)이 아니고, 악만을 헤아릴 줄 알고 선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쓸모 있는 측악(測惡, 악을 살피고 헤아림)이 아니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인정 제2권 / 측인문 2(測人門二) - 총론(總論)』중에서-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석 (역)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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