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술을 데우는 주로(酒鑪)를 보며
대저 주로(酒鑪, 술이나 물을 끓일 수 있는 화로)의 물건 됨됨이를 보건대 그 이치에 본받을 만한 것이 있고 그 공효(功效)상으로 폐(廢)하지 못할 점이 있다 하겠다.
이치상으로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불이 쇠를 이길 수 있는데도 쇠가 오히려 불을 담고 있고, 물이 불을 끌 수 있는데도 불이 거꾸로 물을 끓이고 있으니, 이는 이들을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세상을 경륜(經綸)할 때에도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쓰면서 서로 피해를 받지 않게 하고, 강한 자와 약한 자를 동시에 구제하면서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 역시 대체로 볼 때 앞서 말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이 바로 이치상으로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공효상으로 폐할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눈보라치며 매섭게 한파(寒波)가 닥쳐올 때, 두툼한 갖옷을 입으면 밖은 보호할 수 있을지 몰라도 속까지 따뜻하게 할 수는 없으며, 불 땐 방에 들어앉으면 가만히 있을 때는 편할지라도 제대로 주선하며 행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추위에 대해서 비로소 골머리를 썩이기 시작할 때, 안이나 밖이나 가만히 있을 때나 동작할 때나 두루 적당하게 추위를 녹여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술뿐이라 하겠다.
그런데 술을 차게 마시면 그 효과를 온전히 거둘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주로(酒鑪)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있는 만큼 작법(作法)상 명(銘)을 짓는 것이 마땅하겠기에 다음과 같이 명(銘)을 지었다.
형질(形質)은 쇠요
속에 담은 내용물은 물이고(金以爲質 水兮其實)
불 아니면 끓이지 못하는데
불 지피는 재료는 나무고 (非火不烈 爨維其木)
남은 재는 흙에 속하니 그야말로
상극의 천지오행이 다 갖추어져 있구나(灰土之屬 盖五行足)
물과 불 서로 싸우고
문도(文道)와 무도(武道)가 격렬하게 변하는 사이에(坎离交戰 文武迭變)
액체의 정수 달구어지니
조화를 이룬 기운 물씬 풍겨 나오고 (霛液是煉 太和氤氳)
그 기묘한 조화의 공로, 앉아서 값없이 거둠에
세상천지가 그야말로 온통 봄바람 속이 따로 없구나(坐收奇勛 宇宙同春)
- 장유(張維, 1587~1638), '☞주로명 병서(酒鑪銘 幷序)',『계곡집(谿谷集)』/계곡선생집 제2권/잠(箴) 명(銘) 찬(贊) 16수-
★참조: 번역글을 옮기면서 명(銘)부분만 이상현선생의 번역을 완전표절하고 나름 재해석하여 옮겼다.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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