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문장을 모르는 자와 문장을 말할 수 없다
문장의 좋고 나쁨은 원래 정해진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문장이라는 것이 워낙 정미(精微)하고 변화가 많은 것인 만큼, 반드시 이에 능통한 다음에야 그 문장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니,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도 않고서 문장의 묘한 솜씨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을 모르는 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듯한 돌멩이를 가리켜 옥(玉)이라 하고 정아(正雅)한 것을 비속(鄙俗, 천하고 저질스럼)하다고 하더라도 분간할 길이 없지만, 아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저울로 무게를 달고 잣대로 길이를 재듯 하기 때문에 아무리 속여먹으려 해도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태백(太白 이백(李白))과 같은 고명한 재질의 소유자도 문득 최호(崔顥)에게 스스로 머리를 숙였으니, 이는 대체로 그 시가 진정으로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자후(柳子厚 유종원(柳宗元))는 한퇴지(韓退之 한유(韓愈))를 사마자장(司馬子長 사마천(司馬遷))에 비기면서 “양웅(揚雄 전한(前漢)의 학자이며 문장가)의 글은 국량(局量, 도량, 죽 사물과 대상, 상황등을 포용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협소하고 통창(通暢,막히거나 걸림이 없음, 이론의 여지가 없이유창함)하지 못하니, 자유 분방하여 걸림이 없는 퇴지의 글만 못하다.” 하였으며, 퇴지도 자후에 대해서는 선배처럼 여기면서 평소에 그의 글을 공경하며 심복하였다.
그리고 가령 형공(荊公 송 나라 왕안석(王安石))과 동파(東坡)의 관계로 말하면, 나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이 현격하게 다르고 또 평소에 서로들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한 번 표충관비(表忠觀碑)의 글을 보고는 “자장(子長)과 막상막하의 실력으로서 상여(相如 사마상여(司馬相如))나 자운(子雲 양웅의 자(字)임)도 모두 미치지 못하겠다.” 하였으니, 이는 오직 지견(知見,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밝았기 때문에 평론을 공정하게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공정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말세(末世)에는 안목(眼目)을 갖춘 사람을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하여 오직 명예를 기준으로 높이고 낮추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면 추켜올리고 싫어하면 깎아 내리곤 하니, 헐뜯음을 당한다 해도 노여워할 가치가 없고 칭찬을 받는다 해도 기쁘게 여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근본을 따져 본다면, 단지 자기 스스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따름이다. 아, 모르는 자와 어찌 더불어 말을 할 수 있겠는가?(不知者尙可與言哉)
*[역자 주]태백(太白)과 최호(崔顥): 최호는 당 나라 시인. 그가 지은 ‘등황학루(登黃鶴樓)’는 당대(唐代)의 칠언 율시(七言律詩) 가운데 으뜸 가는 명시(名詩)로 꼽히는데, 이백(李白)이 이 시를 보고는 격찬해 마지않으면서 자기도 이에 필적할 시를 지어 보려고 운(韻)과 시상(詩想)과 시구(詩句)까지 모방하여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 장유(張維, 1587~1638), ' 문장의 좋고 나쁨은 원래 정해진 바탕이 있다[文章美惡自有定質]',『계곡집(谿谷集)』/계곡만필(谿谷漫筆) 제1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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