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청백안설(靑白眼說): 백안시(白眼視)할 수밖에 없는 이유
완사종(阮嗣宗)*이 자기 눈을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으로 곧잘 만들면서 예속(禮俗)에 물든 인사를 보면 번번이 백안으로 대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야 본래 광사(狂士)의 기량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는 평소에 이 일화를 흐뭇하게 여겨 왔다.
아, 선비가 이 흐린 세상에 살아가면서 한 점 아도(阿堵 사람의 눈[眼])를 가지고 끝없이 펼쳐지는 추잡하고도 괴이한 광경들을 보노라면 정말 곡마단 구경을 하는 것만 같을 것이다. 웃통을 벗어제치고 발가벗는가 하면 개처럼 싸우고 원숭이처럼 팔딱거리는 등 별별 행태와 모습을 보이면서 온갖 추악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가령 예(禮)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는 단인(端人) 정사(正士)로 하여금 그 옆에 있게 한다면 그들이 차마 눈을 뜨고서 바로 볼 수가 있겠는가?
사종이 비록 명교(名敎 인륜을 밝히는 유가(儒家))를 말함)에는 배척을 받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요컨대 활달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속진(俗塵, 세속의 때, 속물근성)을 벗어난 선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위진(魏晉) 시대로 말하면 퇴폐 풍조가 극에 달했던 때였다. 그리하여 좀스럽게 구는 무리들이 겉으로는 예법(禮法)을 행하는 척하고 안으로는 사특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아첨하는 자잘한 무리들을 종용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으니 이들 모두는 도척(盜跖)이나 장교(莊蹻)와 같은 마음의 소유자로서 모습만 증삼(曾參)이나 사추(史鰌)처럼 꾸미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사종이 이런 세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일단 높이 날아올라 멀리 피하여 외물(外物) 밖에 우뚝 서지 못한 이상 번거롭고 소란스럽게 눈에 날마다 비치는 것들이라곤 모두 이런 광경들뿐이었을 테니 어떻게 이들을 백안(白眼)으로 대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운치를 아는 고상한 인물들이야말로 원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空谷足音 공곡족음)*와 같다고 할 것이니, 한 번 그 화열(和悅)한 모습을 대하게 될 경우 마음과 눈이 다 함께 환히 밝아지면서 청안(靑眼)이 번쩍 열리게 마련일 것이다. 이러한 심경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실로 사종이 먼저 시현해 보여 준 것일 따름이다.
혜중산(嵆中散)*은 성격이 강직하여 악을 미워하다가 끝내는 이 때문에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사종은 청백안(靑白眼)으로 속류(俗流)들에게 더욱 미움을 받았으면서도 그들이 설치해 놓은 그물망을 빠져 나올 수 있었으니 이는 그것이 익살을 부리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일찍이 ‘이 청백안이야말로 세상과의 갈등을 호쾌하게 풀어 버릴 수 있는 장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보전하는 지혜의 측면에서 볼 때에도 넉넉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다.
*[역자 주]
1. 완사종(阮嗣宗) : 완사종은 삼국 시대(三國時代) 위(魏) 나라의 완적(阮籍)인데 그가 사람에 따라서 반갑게도 대하고 냉담하게도 대했다는 고사이다. 본문의 문자는 《진서(晉書)》 완적전(玩籍傳)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편 《명의고(名義考)》 인부(人部) 청백안(靑白眼)에는 “완적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혜희(嵆喜)가 와서 조문을 하자 완적이 눈의 흰 부분을 드러내고 그의 동생 혜강(嵇康)이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오자 크게 기뻐하여 푸른 눈동자를 보였다.”고 하였다.
2.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나오는 공곡족음(空谷足音)의 고사로서 대단히 진귀한 것을 의미한다.
3. 혜중산(嵆中散 : 혜중산은 중산대부(中散大夫)의 벼슬을 지내었던 혜강(嵆康)으로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혜강이 가난하게 살면서 상수(向秀)와 대장간 일을 하고 있을 때 종회(鍾會)가 명성을 듣고 찾아왔으나 예우를 하지 않자 종회가 유감을 품었다가 뒤에 참소하여 사형을 당하게 하였다. 《晉書 卷49》
- 장유(張維, 1587~1638), '청안과 백안에 관한 설[靑白眼說]',『계곡집(谿谷集)』/계곡선생집 제4권/설(說) 10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4
*[옮긴이 주]
1. 청안(靑眼)과 백안(白眼): 좋은 마음으로 상대를 보는 눈을 청안(靑眼), 업신여기거나 냉대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흘겨보는 눈을 백안(白眼)이라 한다. 완적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완적과 혜강은 그 중심인물이다. 백안시(白眼視)란, 남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태도로 흘겨보는 것으로 고사(故事)의 당사자인 완적은, 겉치레(禮俗)를 중시하고 세속에 연연해하는 세상 속물들에게는 노골적으로 흰자위를 드러낸 백안을 하여 말없이 흘겨보았다고 한다. 정말 개탄스런 것은 정작 백안시를 당해 마땅한 이들이 오히려 백안을 하고 사람들을 업신여긴다는 데에 있다.
2.공곡족음[空谷足音]: 아무 것도 없는 깊고 빈 골짜기에 울리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라는 뜻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가 그 출전이다. 평소 잘 웃지않는 위나라 무후가 여상의 소개로 방문한 서무귀의 말을 듣고는 크게 호탕하게 웃었다. 이에 무후가 웃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던 여상이 궁금하여 서무귀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서무귀가 대답하기를, "당신은 저 월나라의 유배당한 사람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하셨소? 나라를 떠난 지 며칠되지 않아서는 그가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을 보고도 기뻐했소, 나라를 떠난 지 수십일이 되자 전에 가기 나라에서 만난 일밖에 없는 사람을 보고도 기뻐하였소. 일년이 넘자 자기가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만 보아도 기뻐했다고 하오. 나라를 떠나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을 그리는 마음이 깊어지는 법이 아니겠소. 인적이 드문 황량한 고장에 가서 잡초우거져 족제비다니던 길까지 가리우는 곳에서 오랫동안 홀로 있게 되면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기뻐하는 법인게요. 그런데 하물며 형제나 친척의 웃음소리가 곁에서 들릴 때야 어찌하겠소? 임금께서는 참된 사람의 말이나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들어 본 지 참으로 오래되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출전이 되는 글을 바탕에 깔고 상황을 그려보면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다. 즉, 지극히 반갑고 기쁜 것, 흔치 않은 일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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