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마음쓰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사람은 마음을 쓰지 않아서도 안 되지만 원래 마음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장기와 바둑을 두는 것이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공자께서 놀고 먹는 자들을 경계시키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뭔가를 한다고 해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는 다만 그 사람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비루하고 졸렬하여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이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짓는 것을 본업(本業)으로 삼아 왔다. 그러니 평소에 이런 일을 빼놓으면 마음을 쓸 곳이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남 모르는 근심으로 병을 얻어서, 집 문을 굳게 닫아 걸고는 세상일을 일체 사양한 채, 오직 약을 달여 먹고 침과 뜸을 뜨는 데에 몰두해 왔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에서는 담박(澹泊)한 경지에 마음을 노닐면서 입을 막고[塞兌 색태] 빛을 감춰야[葆光 보광] 마땅할 것이니, 그렇게 해야만 본성(本性)을 기르고 생명을 돌보는 도리에 그런대로 어긋나지 않게 될 터이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뿌리를 박아 온 습기(習氣)를 하루 아침에 없애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비록 심사숙고하여 지어 내지는 못했지만, 침상에 엎드려 신음하면서 틈이 나는 대로 이따금씩 붓을 잡고는 어디서 얻어들은 하찮은 말이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초(草)잡아 보곤 하였다.
그 가운데에 한두 가지 새로 밝혀 낸 것이 혹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거의 모두가 남이 먹다 만 음식 찌꺼기이거나 군더더기 말들이요, 길가에서 얻어듣고는 곧장 길에서 말해 버린 것들뿐이니 나의 덕을 저버리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나 하겠다.
아, 이렇게 하는 것도 마음 쓰는 일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일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 마음을 잘못 활용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할 말이 없다 하겠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해 놓고 보니 또 차마 내버릴 수도 없기에, 마침내 정서하여 한 벌을 만들어 남기면서 자신의 허물을 아울러 적어 두는 바이다.
을해년(1635, 인조 13) 4월에 계곡 병부(谿谷病夫)는 쓰다.
- 장유(張維, 1587~1638), '만필 자서(漫筆自敍)'『계곡집(谿谷集)/계곡만필(谿谷漫筆) 제2권/만필(漫筆)』-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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