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답인논문(答人論文): 문장을 논한 것에 답함
서로 헤어진 지 벌써 4~5년이나 되었는데, 남과 북으로 떨어져 있고 산맥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도 끝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은 조금도 가슴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늘 족하(足下)의 뛰어난 재질을 기억에 떠올리곤 하는데 옛날에 벌써 족하는 우뚝 두각(頭角)을 나타냈었지요.
소식이 서로 끊긴 이래로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으니 필시 크게 분발하여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깜짝 놀랄 정도가 되었을 텐데, 내 옆으로 오시게 하지도 못하고 내가 그 옆으로 가 뵙지도 못한 나머지 내 마른 몸뚱이에 물기가 돌도록 스스로 감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 유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찰을 받아 보건대 어휘의 구사가 뛰어나고 식견이 고매하여 과연 옛날에 기대했던 바를 저버리지 않으셨으니, 친구를 떠나 혼자 있는 내 처지에서 위로받는 점이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서찰에서 언급하신 바 문장을 논한 그 취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동감이 갑니다. 다만 한 가지, 나에 대해서 지나치게 칭찬했다 할 정도로 사실 이상으로 치켜올리셨는데, 나를 이끌어 그러한 경지로 나아가게 하려는 목적에서 그러신 것입니까? 어찌 친구에게 이렇듯 참되지 않은 평가를 내릴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나는 과거에 글에 대해서 간신히 나아갈 방향만을 알았을 뿐이니, 비유컨대 바다를 건너가려고 하는 자가 겨우 물가를 떠난 것과 같다고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심사숙고해도 대략 한두 가지 근사한 어휘만을 찾아 낼 뿐 글 한 편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는데, 이는 대체로 1부(部)의 글도 일찍이 익히지 못한 탓이니 소득이 얕았던 것 또한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이래로는 다른 특별한 일이 없었던 만큼 예전에 해 오던 일에 크게 힘을 쏟을 수 있었는데도 게을러서 머뭇거리기만 하였고 또 과거(科擧)의 일에 얽매인 나머지 겨우 몇 부의 글을 읽고 수십 편의 문자를 지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거에 지었던 것보다는 조금 낫다고 할지라도 모두 소견이 좁고 비천한 것들이라서 작자(作者)의 영역을 넘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평소에 간직했던 씩씩한 지기(志氣)도 쓸쓸하게 점점 쇠해져 가는데, 조금 괜찮은 어휘 하나라도 얻게 되면 문득 최고인 양 스스로 만족해 버리니, 이런 식으로는 끝내 가의(賈誼)나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사업을 이루지 못하게 될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예(技藝)에 대해서야 어찌 꼭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하겠습니까. 돌아보건대 나는 이것보다 더 중대한 것에 대해서조차 전혀 얻은 것이 없는 상태이고 보면, 이런 기예야 이 정도로 그치고 다시 발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깊이 병되게 여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다 보니 또 더욱 나태한 습관만 자라날 뿐입니다.
대저 글에는 화(華)가 있고 실(實)이 있는데, 사(辭)는 화에 해당되고 이(理)는 실에 해당됩니다. 성현(聖賢)의 글은 화와 실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제자(諸子) 이하로부터 비로소 갈려져 나오면서 둘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글이 완전해지려면 반드시 화와 실이 겸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만 있고 실이 없기보다는 차라리 화가 없어도 실이 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염락(濂洛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와 낙양(洛陽)의 정자(程子) 형제로서 즉 송유(宋儒)를 말함) 제유(諸儒)의 글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상 사람들은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예에만 열중하여 정신을 극도로 소모시키고 있는데도 끝내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구나 실(實)을 제대로 추구하도록 어떻게 책임지울 수 있겠습니까.
퇴지(退之 당(唐) 한유(韓愈))는 화(華)가 실(實)보다 많은 사람인데도 오히려 “뿌리가 잘 뻗어 내려야 열매가 맺힌다.[根茂實遂]”는 주장을 하였고, 그의 무리들 역시 “반드시 도의 경지가 깊어진 뒤에야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대개 옛날의 것[古者]에 조금이라도 뜻을 둔 자라면 모두들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것입니다. 이 아래로는 단지 지식 수준이 낮은 어린애와 같을 뿐이니 말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족하가 나에게 물어 온 것이나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모두가 오늘날 세상의 풍조가 이러하기 때문일 뿐인데, 돌아보건대 말은 이와 같이 하지만 말만 잘하면서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또한 실(實)과는 동떨어진 일이라 할 것이니, 어찌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식견이 밝지 못해 평가하는 것이 비루하기 그지없으니, 능한 이의 입장에서는 알아줌을 받지 못한다는 탄식이 당연히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군자가 일을 진행시켜 나아가는 것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고 단지 스스로 자기를 넉넉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이니, 진정 자기 마음에 들기만 하면 일단 만족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쪽에서는 반드시 알아줄 수도 있는 일이고, 오늘날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필연적으로 인정을 받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니, 탄식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백세(百世)에 성인(聖人)을 기다려도 의혹되지 않는다.” 하였고, 노자(老子)는 말하기를 “나를 아는 자가 드물면 그만큼 더 나는 귀해지는 것이다.”고 하였는데 군자의 마음가짐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탄식하고 답답하게 여기며 기필코 한 번 알아줌을 받으려고 한다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고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에 비추어 볼 때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 한(韓 한유(韓愈))ㆍ유(柳 유종원(柳宗元)) 등 제공(諸公)들도 오히려 이런 잘못을 면하지 못했으므로 내가 늘 유감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바라건대 족하 역시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아 주었으면 합니다.
만약 “지기(知己)를 만나기가 어려워 노래를 해도 화답(和答)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피차 똑같은 입장입니다. 옛사람도 벗이 찾아오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신의 도(道)가 외로워지는 것을 탄식하였으니 이런 심정을 먼저 맛보았다고 할 만합니다. 남도(南道)에는 필시 식자(識者)들이 많을 테니 나의 의견을 가지고 질정(質正)해 본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유(張維, 1587∼1638), '문장을 논한 것에 답함(答人論文)', 『계곡선생집 제3권/잡저』 중에서-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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