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지극한 공경은 꾸밈이 없고 큰 음악은 소리가 없는 법

지혜는 막힐 때가 있고, 재주는 다할 때가 있고, 도의는 잃을 때가 있고, 명예는 훼손될 때가 있다. 나에게서 나온 것도 이러한데 더군다나 밖에서 이른 것이겠는가? 도덕을 지닌 사람은 항상 남과 소원하고, 사리에 통달한 사람은 항상 세상과 소원하다. 


교만과 인색은 다 나쁜 점이다. 그러나 하늘은 인색보다 교만을 더 미워한다. 천하에 믿을 만한 것이 없고 오직 부지런함과 삼감을 믿을 만하다. 그러나 자신이 삼간다고 믿으면 벌써 삼가는 것이 아니고, 부지런하다고 믿으면 도리어 재앙이 된다. 


남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남을 존경하고, 남에게 모욕을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남을 모욕한다. 의리를 바르게 행하고 도를 밝히는 사람은 공리(功利)가 절로 찾아오지만, 공을 계산하고 이익을 꾀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기질이 거칠고 마음이 가벼운 사람이다. 


뭇 이치가 다 드러나는 것은 은미한 것이 기틀을 잡고 있고, 만물이 모두 동(動)하는 것은 정(靜)한 것이 주관을 한다. 그러므로 북극성이 어둡고 북두칠성이 어두우며, 지극한 공경은 꾸밈이 없고 큰 음악은 소리가 없는 법이다.


하늘에 도가 있으면 명(命)이라 하고, 사람에게 도가 있으면 성(性)이라 한다. 흙과 돌은 본성(本性)은 있지만 마음이 없고, 초목은 마음은 있지만 정(情)이 없으며, 금수는 다 갖추었으니 혈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랑캐가 살육에 과감한 것은 호랑이와 표범이 치고 깨무는 것과 같고, 소인이 사람을 해치는 데 재간이 있는 것은 뱀과 전갈의 독과 같으니 모두 그들의 본성(本性)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하게 보일지라도 그 사람의 자식이 착하지 않으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 청렴하되 각박하지 말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말며, 엄격하되 잔혹하지 말고, 너그럽되 해이해지지 말라. 어려서 사람들이 다 칭찬하고 늙어서 사람들이 다 헐뜯는 사람은 모두 말할 가치도 없다. 


인력이 지배하는 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이기고, 천리(天理 바른 도리와 이치)가 지배하는 사회는 약자가 강자를 이긴다. 나쁜 풍속의 폐단은 이단(異端)보다 심하고, 놀고먹는 해악은 도적보다 심하며, 붕당의 화는 전쟁보다 심하다. - 마음을 파고들고 뼈를 찌르는 말이다. 뜻있는 선비가 격분하지만 구제할 수 없어 크게 탄식하고 마는 것이 이 세 가지이다. -과거의 흠(허물)은 스스로 지기(志氣)를 손상하는 것이고, 문벌의 폐단은 스스로 재능을 제한하는 것이고, 붕당의 폐해는 스스로 원수를 만드는 것이다. 


자식이 살찌면 어미는 마르고, 사람이 번성하면 지력은 떨어지며, 문식(文飾 문장과 언론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겉만 그럴듯 하게 꾸밈,  교언영색)이 성하면 풍속이 피폐해지고, 당파가 극성을 부리면 국력이 약해진다. 어린아이가 몽둥이를 쥐면 함부로 사람을 때리고, 소인이 권력을 잡으면 함부로 사람을 해친다. 


염치 불고하고 먹기만을 추구하는 자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고, 눈을 번득이며 달려가 이익만을 좇는 자는 도적과 다를 것이 없다. 잗달고(하는 짓이 잘고 인색함소심하여 제 일만을 챙기는 사람은 거간꾼과 다를 것이 없고, 패거리를 지어 비방하면서 사악한 사람만을 가까이하는 자는 도깨비와 다를 것이 없다. 기세를 믿고 기운만을 앞세우는 자는 오랑캐와 다를 것이 없고, 수다를 떨며 권세가만을 붙좇는 자는 종이나 첩과 다를 것이 없다. 


덕은 세우고 당(黨, 같은 뜻을 지닌 무리를 모아 세력을 만들고 편을 짓는 것)은 세우지 말며, 은혜는 갚고 원수는 갚지 말라. 운명에 맡기기보다는 뜻을 가다듬는 게 낫고, 지난날을 한탄하기보다는 앞일을 힘쓰는 것이 낫다.


※[역자 주] 

1.질언(質言) : 자신의 생각을 사실 그대로 단정해서 하는 말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격언과 비슷하다. 저자의 체험과 사색에서 우러난 독특한 내용을 담은 대구 형식의 120여 항목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 제2권 /질언(質言)』중에서 발췌정리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종태 (역)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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