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적천리설(適千里說): 비르게 길을 찾아가는 방법
지금 대체로 천리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경로(徑路)의 소재를 분변한 다음에야 발을 들어 걸어갈 뒷받침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 문을 나섰을 때에 당해서는 진실로 갈팡질팡 어디로 갈 줄을 모르므로,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침 바르고 큰 길을 알려주고 또 굽은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세세히 가르쳐주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그 사람이 정성스럽게 일러주기를, “그 굽은 길로 가면 반드시 가시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바른 길로 가면 반드시 목적지를 가게 될 것이다.”고 하리니, 그 사람의 말이야말로 성심을 다했다고 이를 수 있겠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자는 머뭇거리며 과감히 믿지를 못하여 다시 딴 사람에게 물어보고 또 다시 딴 사람에게 묻곤 한다. 그러면 성심(誠心선량하고 성실한 마음)을 지닌 곁사람(傍人 방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묻기를 기다리지도 않고서 그 길의 곡절(曲折)을 빠짐없이 열거하여 나에게 일러주되, 오직 자신이 잘못 알았을까 염려해서 사람마다 모두 같은 말을 하도록 하기까지에 이르는데, 이 정도면 또한 충분히 믿고 뒤질세라 서둘러 길을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사람은 더욱 의심을 내어 생각하기를, “나는 감히 남들이 모두 옳게 여긴 것을 따를 수 없고, 남들이 모두 그르게 여긴 것도 나는 또한 참으로 그른 줄을 모르겠으니, 나는 모름지기 직접 경험을 해보리라.”하고서, 자기 마음대로 가다가 마침내는 함정에 빠져들어 구해낼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러나 가사 종말에 가서야 자신의 미혹된 것을 깨닫고 되돌아온다 하더라도 이때는 또한 이미 시간을 허비하고 심력(心力)을 소모해버린 터라 자못 시간 여유가 없는 걱정이 있게 되는 것이니, 어떻게 하면 남들이 명백하게 일러준 말에 따라 힘써 행하여 공(功)을 쉽게 거둘 수 있을까?
-김정희(金正喜,1789~1856), '적천리설(適千里說)', 완당전집(阮堂全集) 제1권 / 설(說)-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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