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방선부(放蟬賦): 거미줄에 걸린 매미를 풀어 준 까닭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가 있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유익이 있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를 찡그리고 대답조차 하지 않다가 얼마 후에 한마디의 말로써 그의 의아심을 풀어주되, “거미란 놈은 성질이 욕심을 내고, 매미란 놈은 자질이 깨끗하다. 배부르기만 구하는 거미의 욕심은 채우기가 어렵지만은 이슬만 마시는 매미의 창자에서 무엇을 더 구하겠는가? 저 탐오(貪汚)한 거미가 이 깨끗한 매미를 위협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였다.
매우 가는 실을 입으로 토해 내어 어떻게 그물을 만들어 내는지 아무리 이루(離婁)* 같은 밝은 눈으로도 알아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 지혜롭지 못한 매미로서 어떻게 자세히 엿볼 수 있겠는가? 어디로 날아가려고 하던 차에 갑자기 그 그물에 걸려서 날개를 쳐도 더욱더 얽히기만 하였다.
제 이익만 구하려는 청승(靑蠅)*들은 온갖 냄새를 따라 비린내만 생각하고 나비도 향기를 탐내어 마치 미친 듯이 바람을 따라 오르내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물에 걸릴지라도 누구를 원망하랴. 본래 그 허물이 너무 탐내고 구하려는 욕심 때문인데, 너는 오직 남과 더불어 아무 다투는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 악독한 그물에 걸렸을까? 너의 몸에 뒤얽힌 거미줄을 풀어놓고 너에게 다음과 같은 간곡한 말로 부탁하노라.
“높은 숲을 찾아 잘 가서 아름다운 그늘의 깨끗한 곳을 가려서는 자주 옮기지 말지어다. 이런 거미들이 엿보고 있다. 한 곳에만 오래 있지 말라. 당랑(螳螂)*이 뒤에서 노리고 있다. 너의 거취(去就)를 조심한 다음이라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다.”
※[역자 주]
1.이루(離婁) : 황제(黃帝) 때 눈이 밝기로 유명했다는 사람. 《맹자(孟子)》이루 상(離婁上) 주에 “1백보 밖에 있는 가는 털도 분간했다.” 하였다.
2.청승(靑蠅) : 쉬파리로 소인에게 비유하는 말. 《시경(詩經)》소아(小雅) 청승에 “앵앵하는 쉬파리 울타리에 앉아 있네. 깨끗한 군자(君子)들은 간사한 말 믿지 마오.” 하였다.
3.당랑(螳螂) : 당랑은 버마재비인데,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생각하고 뒤에 닥치는 재해는 깨닫지 못한다는 비유. 《설원(說苑)》정간(正諫)에 “매미는 버마재비가 보는 것을 모르고 울기만 하고, 버마재비는 매미를 덮치려고만 하면서 새가 자신을 엿보는 것은 모른다.” 하였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방선부(放蟬賦)', 동국이상국전집 제1권/고부(古賦) 6수(首)-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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