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대체를 기르는 일과 소체를 기르는 일

만일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듯이 입으며 종신토록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리고 한 상자의 글도 전할 것이 없게 된다면, 삶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을 일컬어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이란 금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제일로 경박한 남자가 있으니,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에 속하는 것을 지목하여 한사(閑事)라 하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지목하여 고담(古談)이라고 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그 대체(大體)를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그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고 하였다. 저들이 소인됨을 달게 여기는데, 나 또한 어찌할 것인가?


만약 우리 인간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온 생애동안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자마자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리고 한 상자의 글도 전할 것이 없다면 삶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삶도 삶이라고 말한다면 짐승과 구별되지도 않는다.


경전의 뜻이 밝은 뒤에야 도체(道體)가 드러나고, 그 도를 얻은 뒤에야 심술(心術)이 바르고, 심술이 바른 뒤에야 덕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경학은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어떤 이는 혹 선유(先儒)의 설을 지켜 뜻이 같으면 두둔하고 뜻이 다르면 공벌(攻伐)하여 감히 의논조차 못하게 하는 자가 있다. 이것은 모두 책을 빙자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무리들이며, 진심으로 선을 향하는 자들이 아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반산(盤山) 정수칠(丁修七)에게 주는 말' 중에서,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7권/증언(贈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도련 (역) |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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