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문장은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

내가 열수(洌水) 가에 살 때였다. 하루는 묘령(妙齡)의 소년이 찾아왔는데 등에는 짐을 지고 있기에 그것을 보니 서급(書笈 책상자)이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저는 이인영(李仁榮)입니다.” 라고 하였고, (몇 구절 삭제하였음.) 나이를 물으니 열아홉이라고 했다. 


그의 뜻을 물으니 뜻은 문장에 있는데, 비록 공명(功名 과거시험을 통과해 벼슬에 오르는 것)에 불리하여 종신토록 불우하게 살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서급을 쏟으니, 모두 시인재자(詩人才子)의 기이하고 청신한 작품들이었다. 파리 머리처럼 가늘게 쓴 글도 있고 모기 속눈썹 같은 미세한 말도 있었다.


그의 뱃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기울여 쏟으니 흘러나오는 것이 호로병에서 물이 흐르듯 하였는데, 대개 서급에 있는 것보다도 수십 배나 많았다. 그의 눈을 보니 번쩍이는 광채가 흐르고 있었으며, 그의 이마를 보니 툭 불거진 것이 서통(犀通, 무소 서, 통할 통, 앞짱구를 코뿔소의 뿔에 비유한 것으로 헤아려짐)이 밖으로 비치는 듯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아, 자네는 앉게나. 내가 자네에게 이야기하겠네 대저 문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물건인가 하면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네. 이는 기름진 음식이 창자에 차면 광택이 피부에 드러나고 술이 배에 들어가면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것과 같은 것인데, 어찌 갑자기 이룰 수 있겠는가. 


화중(和中 조화롭고 온화함을 중심에 둠)한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우(孝友)의 행실로 성(性)을 닦아 공경으로 그것을 지니고 성실로 일관하되 이를 변하지 않아야 하네. 이렇게 힘쓰고 힘써 도(道)를 바라면서 사서(四書)로 나의 몸을 채우고 육경(六經)으로 나의 지식을 넓히고, 제사(諸史)로 고금의 변에 달통하여 예악형정(禮樂刑政)의 도구와 전장법도(典章法度)의 전고(典故)를 가슴속 가득히 쌓아 놓아야 하네. 


그래서 사물(事物)과 서로 만나 시비와 이해에 부딪히게 되면 나의 마음 속에 한결같이 가득 쌓아온 것이 파도가 넘치듯 거세게 소용돌이쳐 세상에 한번 내놓아 천하 만세의 장관(壯觀)으로 남겨보고 싶은 그 의욕을 막을 수 없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네. 이것을 본 사람은 서로들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네. 이러한 것을 일러 문장이라 하는 것이네. 어찌 험한 길을 꺼리지 않고 높은 문장을 바라보며 급히 달려가서 이른바 문장이라는 것을 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일컫는 문장학은 성인의 도를 해치는 모적(蝥蠈, 해로운 벌레)이니, 반드시 서로 용납할 수 없을 것이네. 그러나 한 단계 낮추어서 가령 그것을 한다고 해도 또한 그 가운데 문과 길이 있고 기(氣)와 맥(脈)이 있는 것이니, 또한 반드시 경전(經傳)을 근본으로 삼고 제사(諸史)와 제자(諸子)를 보조로 삼아, 혼후하고 충융(沖融)한 기운을 쌓고 깊숙하고 영원하고 도타운 아취(雅趣)를 길러야 하네. 그리하여 위로는 왕의 정책을 빛낼 것을 생각하고 아래로는 한세상을 주름잡을 것을 생각한 뒤에야 바야흐로 녹록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네. 나관중(羅貫中)을 시조로 삼고 시내암(施耐菴)과 김성탄(金聖歎)을 소목(昭穆)으로 삼아, 앵무새가 혓바닥을 왼쪽으로 뒤집었다 오른쪽으로 젖혔다 하면서 재잘거리는 것 같은 음탕하고 괴상한 말로 스스로 문채를 내고는 은근히 스스로 기뻐하는 것이 어떻게 문장이 될 수 있겠는가? 


너무 처량하여 귀신이 흐느끼는 듯한 시구는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유교(遺敎)가 아니네. 음탕한 곳에 마음을 두고 비분한 곳에 눈을 돌려 혼을 녹이고 애간장을 끊는 말을 명주실처럼 늘어놓는가 하면 뼈를 깎고 골수를 에는 말을 벌레가 우는 것처럼 내어놓아, 그것을 읽으면 푸른 달이 서까래 사이로 비치고 산귀신이 구슬피 울며 음산한 바람에 촛불이 꺼지고 원한을 품은 여인이 흐느껴 우는 것 같네. 


이와 같은 것은 문장가에게 있어서만 자정(紫鄭 정도를 해치는 것)이 될 뿐만이 아니라, 그 기상(氣象)이 처참해지고 심지(心地)가 각박해져서 위로는 하늘의 큰복을 받을 수 없고 아래로는 세상의 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되네. 명(命)을 아는 자는 크게 놀라서 재빨리 피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는데, 더구나 몸소 따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과거 제도는 쌍기(雙冀, 고려 공종때의 문신으로 한림학사를 역임)에서 시작되어 춘정(春停 변계량(卞季良)의 호)에게서 갖추어졌네. 무릇 이 기예를 익히는 자는 정신을 녹이고 세월을 허비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노망멸렬(鹵莽滅裂)하게 그 생애를 마치게 하니, 진실로 이단(異端) 가운데에서도 제일이고 세도(世道)의 큰 근심거리이네. 


그러나 국법(國法)이 변하지 아니하니 이를 고이 따를 뿐이며, 이 길이 아니면 군신(君臣)의 의리를 물을 데가 없다네. 그래서 정암(靜庵)ㆍ퇴계(退溪) 같은 선생들도 모두 이 기예를 닦아서 발신(發身)했다네. 그런데 지금 자네는 어떤 사람이기에 신발을 벗어던지듯이 돌아보지 않는가? 성명(性命)의 학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이 같은 음교(淫巧)한 소설의 지류(支流)와 괴롭고 고달픈 단구(短句, 글이 짧고 간략한 문장)의 여예(餘裔, 후예, 후손을 이르는 말)를 하기 위해 이 신세(身世)를 가볍게 포기하려 하는가? 


위로는 부모를 섬기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부양하지도 못하며, 가까이는 문호(門戶)를 드러내어 종족(宗族)을 비호할 수도 없고 멀리는 조정을 높여 백성을 윤택하게 할 수도 없는데, 나시(羅施 나관중과 시내암)의 사당에 배향(配享)되기만 생각하고 있으니, 광패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원컨대 그대는 이 뒤부터는 문장학에 대한 뜻을 끊고 빨리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게. 그리하여 안으로는 효우(孝友)의 행실을 돈독히 하고 밖으로는 경전의 공부를 부지런히 함으로써 성현의 격언(格言)이 항상 몸에 배어 어기지 않도록 하게. 곁들여 공령업(功令業 과거공부)도 닦아 발신을 꾀하여 임금을 섬길 수 있도록 노력하게. 


이렇게 하여 소대(昭代, 근심걱정이 없는 평안한 시대)의 서물(瑞物, 복되고 좋은 증표)이 되고 후세의 위인이 되도록 힘쓸 것이요, 경망스러운 취미 때문에 천금 같은 몸을 경솔히 버리지 말게. 진실로 자네가 문장에 대한 집념을 고치지 않는다면, 마조(馬吊 골패)ㆍ강패(江牌)ㆍ협사(狹斜 놀이의 일종)의 놀이도 이보다 더 나쁘지 않을 것이네.” 가경(嘉慶) 경진년 5월 1일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이인영(李仁榮)에게 주는 말(爲李仁榮贈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7권/증언(贈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도련 (역) ┃ 1985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