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마음 속에 보답을 바라는 근성을 버려라
여러 일가 중에 며칠째 밥을 짓지 못하는 자가 있을 때 너희는 곡식을 주어 구제하였느냐. 눈 속에 얼어서 쓰러진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땔나무 한 묶음을 나누어주어 따뜻하게 해 주었느냐. 병이 들어 약을 복용해야 할 자가 있으면 너희는 약간의 돈으로 약을 지어 주어 일어나게 하였느냐. 늙고 곤궁한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때때로 찾아 뵙고 공손히 존경을 하였느냐. 우환(憂患)이 있는 자가 있으면 너희는 근심스러운 얼굴빛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환의 고통을 그들과 함께 나누어 잘 처리할 방도를 의논해 보았느냐.
이 몇 가지 일을 너희들은 하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여러 집안에서 너희들의 급박하고 어려운 일에 서둘러 돌보아 주기를 바랄 수 있느냐.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이 먼저 나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의 오만한 근성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유념해서 평소 일이 없을 때에 공손하고 화목하며 근신하고 충성하여 여러 집안의 환심을 사도록 힘써야 할 것이요, 절대로 마음속에 보답을 바라는 근성을 남겨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후로는 너희들에게 우환이 있는데도 저들이 돌보지 않더라도 너희들은 절대 마음에 한을 품지 말고 오로지 곧게 추서(推恕, 헤아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하여 ‘저 사람이 마침 서로 방해되는 일이 있어서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절대로 입에 경솔한 말을 올려 ‘나는 일찍이 이렇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저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을 한번 하면 그동안 쌓아놓은 공덕이 하루아침에 바람에 날리는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너희들은 사고무친(四顧無親)한 곳에서 생장하고 봄바람처럼 온화한 가운데서 양육되었으므로, 자제로서 부형을 섬기는 도리와 종족(宗族)을 섬기는 도리를 일찍이 보고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으로서 궁약(窮約)에 처하는 도리를 익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다하는 충성은 알지 못하고 먼저 남이 나에게 베풀어 주는 은혜만을 기대하며, 규문의 행실은 닦지 아니하고 인리(隣里)의 칭찬만을 바라니, 그래서야 되겠느냐.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21권 "아들들에게 부친 편지들" 중에서 발췌-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다산 시문집 제 21권 성백효 (역) ┃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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