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시(詩)의 근본



오늘날에 있어서 시율(詩律)은 마땅히 두공부(杜工部 두보(杜甫)를 가리킴)로써 공자(孔子)를 삼아야 한다. 그의 시가 백가(百家)의 으뜸이 되는 까닭은 《시경》 3백 편의 유의(遺意)를 얻었기 때문이다. 《시경》 3백 편은 모두 충신, 효자, 열부(烈婦), 양우(良友)들의 진실하고 충후한 마음의 발로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면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뜻이 서지 않고 학문이 순전하지 못하며 대도(大道)를 듣지 못하여, 임금을 요순(堯舜)의 성군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혜택을 입히려는 마음을 갖지 못한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니, 너는 힘쓰도록 하여라.


시의 근본은 부자(父子)ㆍ군신(君臣)ㆍ부부(夫婦)의 인륜에 있으니, 혹 그 즐거운 뜻을 선양하기도 하고,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는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서 항상 힘이 없는 사람을 구제해 주고 재물이 없는 사람을 구원해 주고자 하여 배회하면서 차마 그들을 버려둘 수 없는 뜻을 둔 뒤에야 바야흐로 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자기의 이해에만 관계되는 것일 뿐이라면 이는 시라 할 수 없는 것이다.(중략)


그러나 시를 지음에 있어서 전연 사실을 인용하지 않고 풍월(風月)이나 읊으며 바둑 이야기나 술타령만 하면서 겨우 압운(押韻)을 하는 것은 서너 집 모여 사는 시골 마을의 촌선생[村夫子]의 시에 불과하다. 앞으로 시를 지을 때에는 모름지기 사실을 인용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야 할 것이다.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21권 "아들들에게 부친 편지들" 중에서 발췌-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다산 시문집 제 21권 성백효 (역) ┃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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