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학문의 방법
‘용모를 움직임’[動容貌 동용모], ‘말을 함’[出辭氣 출사기], 안색을 바로하는 것’[正顔色 정안색]이 학문을 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진실로 이 세 가지에 힘을 쓰지 못한다면 아무리 하늘을 꿰뚫는 재주와 남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끝내 발을 땅에 붙이고 다리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폐단은 말을 함부로 하고 멋대로 행동하여 도적이 되고 큰 악(惡)이 되며 이단(異端)과 잡술(雜術)이 되어서 세상에 못하는 일이 없게 된다. 나는 ‘삼사(三斯)’로써 서재(書齋)에 이름하고자 하는데, 이는 '거칠고 태만함을 멀리하며[斯遠暴漫 기원폭만], 비루하고 패려함을 멀리하며[斯遠鄙倍 기원사배], 진실에 가깝게 한다[斯近信 기근신]' 함을 이름이다. 지금 너를 덕에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이로써 너에게 주는 것이니, 너는 이 ‘삼사(三斯)’로써 네 서재를 이름하고 그 기문(記文)을 지어 차후 인편에 부치도록 하여라.』
『독서에는 반드시 먼저 근기(根基)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먼저 근기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효ㆍ제(孝弟)가 그것이다. 모름지기 먼저 효ㆍ제를 힘써 근기를 세운다면 학문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학문이 몸에 배게 되면 독서는 따로이 그 층절(層節)을 논할 것이 없다.
문장은 반드시 먼저 경학(經學, 사서오경)으로써 근기(根基)를 확고히 세운 뒤에 사서(史書, 역사를 기록한 책)를 섭렵해서 정치의 득실과 치란(治亂)의 근원을 알아야 하며, 또 모름지기 실용적인 학문에 마음을 써서 옛사람들의 경제(經濟)에 관한 서적을 즐겨 읽고서 마음속에 항상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모든 사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둔 뒤에야 비로소 독서하는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뒤에 혹 안개 낀 아침과 달 밝은 밤, 짙은 녹음과 가랑비 내리는 것을 보면, 시상이 떠오르고 구상이 일어나서 저절로 읊어지고 저절로 이루어져서 천지 자연의 소리가 맑게 울려 나올 것이니, 이것이 바로 생동하는 시가(詩家)인 것이다. 나의 이 말을 오활하다고 여기지 말라.
책을 가려 뽑는 초서(鈔書) 방법은, 나의 학문이 먼저 주관이 있어 확립된 뒤에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저울(權衡 권형, 저울추와 저울대)이 마음속에 있어서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학문의 요령을 지난번에 말해 주었는데, 필시 네가 잊은 게로구나.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초서(鈔書)에 의심을 하여 이러한 질문을 하였겠느냐. 언제나 책 한 권을 읽을 때에는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뽑아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旬日 순일]의 공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21권 "아들들에게 부친 편지들" 중에서 발췌-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다산 시문집 제 21권 성백효 (역) ┃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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