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문장을 배운 적이 없다

(상략) 상(선조임금)께서 이이에게 이르기를, “일찍이 무슨 글을 읽었으며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슨 글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과거를 준비할 때에 읽은 것은 안 읽은 것이나 같습니다. 


학문에 뜻을 두면서 《소학》부터 읽어 《대학》ㆍ《논어》ㆍ《맹자》에 이르렀는데, 아직 《중용》까지는 못 읽었습니다. 다 읽고서 다시 시작하여 반복하였으나 아직도 통달하여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육경(六經)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였다.(옮긴이 주: 이 때가 1574년이니 율곡선생의 연세는 38세다. 선생의 행장에 의하면, 글을 배우기 시작한 나이가 8세였다. 그리고 23세에 퇴계선생과 교유하고 학문을 주고 받으면서, "거경(居敬)ㆍ궁리(窮理)와 《중용(中庸)》ㆍ《대학(大學)》의 집주(輯註)와 〈성학십도(聖學十圖)〉 등의 학설을 변론하였는데, 퇴계가 옛날의 의견을 버리고 율곡의 설을 따른 것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건대, 선생이 '아직도 못 읽었다'는 의미는, 이어지는 말씀의 '통달하지 못했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물론 당시의 독서라함은 통독을 넘어선 완전한 암송을 의미한다. 여기서 선생이 학문을 대하는 자세와 그 깊이와 수준, 아울러 인간적인 겸손까지 엿볼 수 있다.)


상께서 이르기를, “사서(四書) 중에 무슨 글을 제일 좋아하는가?” 하시니, 이이가 아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습니다. 여가가 있으면 《근사록(近思錄)》과 《심경(心經)》 등의 글도 읽었습니다. 다만 질병과 공무로 인하여 많이는 전심하여 읽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상께서 이르기를, “소싯적에 글짓기도 연습하였는가. 그대의 문장을 보니 매우 좋은데 역시 일찍이 배웠던 것인가?”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신이 소싯적부터 문장을 배운 적은 없습니다. 소싯적에는 선학(禪學)을 상당히 좋아하여 여러 불경을 보았는데 착실한 곳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우리 유학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문장을 하기 위하여 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문장을 짓는 데에 대강 문리를 이룬 것 역시 특별히 공부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찍이 한문(韓文)과 《고문진보(古文眞寶)》 및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의 대문(大文)을 읽었을 뿐입니다.” 하였다.(이하생략)


-이이(李珥 1536~1584), '어록(語錄) 하(下)' 중에서,『율곡전서(栗谷全書) 』/ 율곡선생전서 제32권 / 어록(語錄)-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권태익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이동환 이식 이재호 이지형 하성재 (공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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