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거대한 집이 기울어지는 데는 썩은 나무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도(世道,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는 시속(時俗, 그때의 풍속이나 유행)을 따르는 데에서 나빠지고, 공적은 작록만 탐내는 자를 먹여주는 데서 무너지고, 정사(政事, 정치와 행정전반을 아울러 이름)는 부의(浮議, 뜬구름 잡는 식의 들뜬 논의)를 일으키는 데에서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오랫동안 쌓인 폐단으로 곤궁해지는 것인데 이 네 가지가 그중에 큰 항목입니다.
그렇다면 세도가 시속을 따르는 데에서 나빠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시대가 흐르고 풍속이 변해짐에 따라 인심도 점점 야박해지는데 교화로 진작시키지 않는다면 풍속이 몹시 퇴패해질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지금의 세도는 마치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나쁜 습관에 젖어 든 지 이미 오래되었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므로 예의염치가 확립되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이리하여 시속을 따르는 자는 비방이 없지만 대중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기 때문에 대소(大小)와 존비(尊卑)의 신분을 막론하고 서로 이끌어 거칠고 문란한 지경에 빠져들어 멋대로 악한 짓을 하면서 조금도 기탄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비들도 이(利)를 먼저하고 의(義)를 뒤로하는데 일반 백성들이 무엇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는 임금이나 부모도 잊고 염두에 두지 않는 판국이니 삼강(三綱)이 없어지고 구법(九法)이 무너졌다는 말은 오늘날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무사한 때에 이미 강상(綱常, 삼강과 오상, 즉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 해이해졌는데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윗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으면서 구제하지 않을 것이니 흙더미가 무너지는 것 같은 사세는 한쪽 발을 들고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위망의 상태입니다.
공적이 작록을 탐내는 자를 먹여주는 데서 무너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관직을 나누어 설치한 것은 곤궁한 사람들에게 녹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재를 얻어 국사를 잘 다스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사람을 위해서 관직을 고르고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묻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대관(大官, 고위관리)들은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실지로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지닌 사람이 적고 소관(小官)들도 녹 받아먹기만을 탐내면서 전혀 직책을 수행하려는 생각을 갖지 아니하여 서로 옳지 못한 행위만을 본받으므로 관직의 기강이 해이해졌습니다.
그중에 자기가 맡은 직책을 다스리려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비웃고 욕하면서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가 하면 여러모로 저지하고 방해하여 끝내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하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하찮은 서리(胥吏)들까지도 기회를 틈타 농간을 부려 마침내 직위를 잃게 하는데, 이러한 습관이 이미 관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선비로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지조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은 벼슬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작록과 영달을 탐내는 자와 곤궁하여 살 길이 없는 자들은 혹은 시기를 노려 득세할 수 있고 또는 마음과 뜻을 굽혀야만 관직에 오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소 신료 모두가 감히 직무에 뜻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중에 조금 낫다는 자들도 문서만을 다루어 기회에 대응해 나갈 뿐입니다. 이리하여 모든 공적이 날로 무너지고 여러 관사가 모두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군현(郡縣)에까지 파급되어 쇠잔하지 않은 고을이 없으니 안팎이 텅 비어 나라가 꼴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위망의 상태입니다.
정사는 들뜬 의논((浮議)을 일으키는 데에서 어지러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반드시 집정관(執政官)을 두었는데, 삼공(三公)은 육경(六卿)을 통솔하고 육경은 여러 관사를 거느렸습니다. 이리하여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다스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받들어 존비의 질서가 있었으므로 기강이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조정의 의논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조석으로 변경되지만 시비(是非)의 권한을 누구도 주장하는 사람이 없고 상하 대소가 서로 관섭하지 않으므로 조정의 관료들이 각자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합니다. 이른바 부의란 것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것으로 처음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점차 치성해져 나중에는 묘당(廟堂)을 동요시키고 대각(臺閣)에 파란을 일으키기까지 하는데 온 조정이 거기에 휩쓸려 누구도 감히 저항하지 못합니다.
들뜬 의논의 위력은 태산보다도 무겁고 칼날보다도 예리한 것으로 그 칼날에 한번 저촉되면 공경도 그 존귀함을 잃게 되고 뛰어난 인재들도 그 명성을 잃게 되며, 장의(張儀)와 소진(蘇秦) 같은 자들도 변론을 펼 수 없고,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같은 자들도 그 용력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이상스러운 일입니다.
이리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무시하면서 사람들이 각자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기강이 사라져 버렸고, 의리의 존재는 돌보지 않은 채 오직 들뜬 의논의 형세만을 관망할 뿐입니다. 아, 정사가 대각(臺閣)에서 나오더라도 오히려 난이 일어날까 걱정스럽다고 하는데, 더구나 정사가 들뜬 의논을 일으키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경우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는 진정 천고에 들어본 일이 없는 것입니다. 비유하건대, 1만 석의 무게를 가진 배가 망망대해를 운항하는데 누구도 키를 잡는 사람이 없이 그냥 풍랑에 맡겨두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위망의 상태입입니다.
백성들이 오랫동안 쌓인 폐단에서 곤궁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대체로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공통적인 병폐인 것으로 변통시키지 않으면 백성들의 살 길이 곤궁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권간(權奸)의 손을 거치면서 많은 폐법(弊法)이 만들어졌는데도 잘못된 것을 그대로 따라 시행하면서 고치지 아니하여 폐단이 점점 커졌고 백성들에게 끝없이 해독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개혁하지 아니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인구의 수와 개간된 토지가 옛날보다 반절이나 줄었는데도 공부(貢賦)의 징수는 오히려 전보다 극심합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곤궁해지고 재물이 고갈되어 뿔뿔이 흩어져 떠나버렸으므로 백성이 더욱 적어지고 부역은 갈수록 심해지니 이러한 형세로 나간다면 백성들은 필시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고야 말 것입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것으로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편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민생이 날로 위축되어 마치 물이나 불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보살펴 주면 임금이고 우리를 학대하면 원수이다.”라는 말에 대해서 어찌 매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孟子)는, “숲을 위하여 새를 모는 것은 새매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 나라 백성들로서 만약 조(曹)와 거(莒) 같은 이웃 나라가 곁에 있다면 반드시 어린 자식들을 강보에 싸 업고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위망의 상태입니다.
지금 이 네 가지 상태는, 기미가 환히 드러난 것으로 은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이 있는 사람은 모두 볼 수 있고 입을 가진 사람은 다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어찌 전하께서만 모르실 수 있겠습니까.(이하 중략)...
예로부터 군주들이 잘 다스리고 싶어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두 가지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임금으로 자신을 위하는 일이 너무도 사치스러워 궁실을 성대하게 하는 일, 성색(聲色)을 좋아하는 일, 말 타고 사냥을 즐기는 일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견디지 못하여 난을 일으키는 것이 첫째이고, 연약한 임금으로 정권이 권간에게 주어져 자신이 정사를 하지 못하고 붙어사는 처지에 있는가 하면 좌우의 신하들도 모두가 심복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무슨 일을 하려면 즉시 제지당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둘째입니다....
옛날 제갈량(諸葛亮)은, “적을 토벌하지 않으면 왕업도 망할 것이니, 그저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적을 치는 것이 낫다.” 하였습니다. 신 역시 ‘경장(更張,사회적ㆍ정치적으로 부패(腐敗)한 모든 제도를 개혁함)하지 않으면 나라는 필시 망할 터인데 그냥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경장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으니 경장하여 잘 되면 사직(社稷, 국가의 기반)에 복이 될 수 있습니다. 경장하여 잘못되더라도 망하는 것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고 경장하지 않고 있다가 망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한(漢)나라 신하인 유도(劉陶)는, “하늘의 재앙은 군주의 피부를 살을 아프게 하지 않고, 지진(地震)과 일식(日蝕)ㆍ월식(月蝕)은 군주의 몸을 즉시 손상되게 하지 않으므로, 해와 달과 별의 어긋남을 무시하고, 하늘의 노여움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라고 경계하였습니다....
거대한 집이 기울어지는 데는 썩은 나무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신같이 엉성하고 못난 사람이 감히 머리를 들고 우러러보면서 애통하게 외치는 것은 그 정상(情狀)은 진실로 슬프지만 그 어리석음은 진실로 자신을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입은 은혜는 몸이 가루가 되어도 보답하기 어려운데,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죄는 죽어야 마땅합니다(이하생략)....
-이이(李珥 1536~1584), '陳時弊疏(진시폐소, 시폐(時弊)에 대해 진달한 상소문)' 부분발췌,『율곡전서(栗谷全書) 』/ 율곡선생전서 제7권 / 소(疏)-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권태익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이동환 이식 이재호 이지형 하성재 (공역) ┃ 1968
"‘여러 가지 정책에 백성을 구제하는 실상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법령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고 그 피해는 백성에게 돌아가는 것이니, 정책을 마련하여 폐단을 바로잡는 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길입니다....신하들이 정책을 건의하는 것은 오직 그 말단적인 것만을 바로잡으려 하고 근본적인 것은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듣기에는 아름다운 것 같으나 행해 보면 아무 내용도 없는 것입니다....의논이 한 번 잘못되기만 하면 그 피해가 지체 없이 백성들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괴이하게도 이는 고금을 통하여 들어 보지 못한 일입니다. 비유하건대 이는 마치 만 칸이나 되는 큰 집을 오래도록 수리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크게는 들보에서부터 작게는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썩지 않은 것이 없는데, 서로 떠받치며 지탱하여 근근이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동쪽을 수리하려 하면 서쪽이 기울고 남쪽을 수리하려 하면 북쪽이 기울어 무너져 버릴 형편이라서, 여러 목수들이 둘러서서 구경만 하고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형편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대로 방치하고 수리하지 않는다면 날로 더욱 썩고 기울어져 장차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니, 오늘날의 형세가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이이, 1574년 상소문 '만언봉사 萬言封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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