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생각해야 할 9가지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해야 할 것[九思]이 있다. 볼 때는 분명히 볼 것을 생각하고,[視思明 시사명] 들을 때는 분명히 들을 것을 생각하고,[聽思聰 청사총] 낯빛은 온순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色思溫 색사온]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貌思恭 모사공]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言思忠 언사충] 일은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며,[事思敬 사사공] 의문스러우면 물을 것을 생각하며,[疑思問 의사문] 분(忿)해지면 어려워질 일을 생각하며,[忿思難 분사난] 얻을 것이 있으면 의리에 맞는지를 생각한다.[見得思義 견득사의]” 하였다. 《논어》

주자가 말하기를, “보는 데 가려진 것이 없으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며, 듣는 데 막힌 것이 없으면 밝게 들리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안색은 얼굴에 나타난 것이고, 용모는 온몸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물을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의심이 쌓이지 않을 것이며, 어려워질 일을 생각하면 반드시 분함을 자제하게 되고, 의로움을 생각하면 얻는 것이 구차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사람은 마땅히 일에 따라서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만약 아무 일이 없이 생각한다면 이것은 망상(妄想)입니까?” 하니 주자가 대답하기를, “만약 한가한 때에 생각하지 않다가 일을 당하여 생각하면 일을 처리할 수 없게 되니, 일은 모름지기 먼저 그 사리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 하였다. 만 가지 일과 만 가지 물(物)을 다 이해해야 하지마는, 몸을 살피는 것이 더욱 간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드러냈다.


○ 의리에 의심이 있으면 묵은 견해를 씻어 버리고 새로운 뜻이 나오게 하여야 한다. 《횡거문집(橫渠文集)》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마음에 의심이 있는데도 묵은 견해에 매여 있으면 생각이 치우치고 고집스러워지며 고루하고 인색해질 것이니, 어디로부터 새로운 뜻이 나오겠는가.” 하였다. 


○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의심할 줄을 모르는 것은 다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아서이다. 실지로 노력하는 것이다. 실제로 공부하면 반드시 의문이 생겨날 것이니, 반드시 행하지 못할 곳이 있는 것, 이것이 의문이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의리를 사색(思索)하다가 혼란하여 막히면 반드시 모든 것을 싹 쓸어 없애, 가슴속이 텅 비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그러다 문득 다시 한 번 잡고 보면 맞아떨어지는 곳이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에 이 선생(李先生 연평(延平) 이동(李侗))을 뵈었을 때 말씀하신 내용인데, 오늘에야 그 말씀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연평(延平) 선생이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도리는 해가 떠 있을 때 낮이다 깨달아야 하고, 밤에는 바로 고요한 데로 가서 앉아서 생각을 하여야 비로소 터득할 수 있다.’ 하셨는데, 내가 이 말씀에 따라 해 보니 진실로 효과가 대단하였다.” 하였다. 마음이 고요하면 이치가 밝아진다.


○ 앎을 지극히 하는[致知] 것은 수양하는 데 달려 있고, 앎을 길러 가는 데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정씨외서(程氏外書)》 ○ 이천(伊川) 선생의 말씀이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밖으로 물욕에 흔들리지 않으면 마음의 경지가 맑고, 안으로 함양(涵養)하는 바탕이 있으면 총명과 예지가 생겨난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배우는 이의 공부는 오직 거경(居敬)ㆍ궁리(窮理)에 있는데, 이 두 가지 일은 상호 발전하게 해 준다. 궁리할 수 있으면 거경 공부가 날로 진보할 것이며, 거경할 수 있으면 궁리 공부가 날로 치밀해진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학문을 강론하는 데 힘쓰는 자는 실천하는 데 결점이 많고, 실천하는 데 몰두하는 자는 또 학문을 강론하는 것을 무익(無益)하다고 여기곤 한다. 이는 실천을 통해 학문을 강론하는 공효를 지극히 해 아는 것이 더욱 밝아지게 하면 지키는 바가 날로 견고해져서 구구하게 입이나 귀로 말하고 듣는 이와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모르는 것이다.” 하였다.(옮긴이 주: 거경은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지는 일이며, 궁리는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이상은 궁리하고 노력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두 가지 공부이긴 하지만 반드시 동시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위에서 주로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것에 대해서만 논했더라도 실천의 의미 역시 겸하고 있습니다.


- 이이(李珥, 1536~1584), 율곡선생전서 제20권/ 성학집요(聖學輯要) 2/ 제2 수기(修己) 중에서 부분-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권태익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이동환 이식 이재호 이지형 하성재 (공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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