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뜻이 서지 않는 세 가지 병통

인(仁)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의(義)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한 집을 비워 두고 거처하지 아니하며, 바른길을 버리고 행하지 아니하니, 불쌍하구나.


주자가 말하기를, “인은 마음 전체의 덕으로서, 천리(天理) 자연의 편안함이 있고, 사람의 욕심에 빠질 위태로움은 없으니, 사람은 항상 그 가운데 있어야 하고 잠시라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안한 집이라 하였다. 


의(義)라는 것은 마땅함이니, 마땅히 행할 천리요, 간사하고 잘못된 사람의 욕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를 '바른 길'이라 한 것이다. 광(曠)은 비었다[空]는 뜻이고 유(由)는 행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도가 본래 고유한 것인데, 사람이 스스로 끊으니 이것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현의 깊은 훈계로, 배우는 이가 철저히 성찰해야 할 바이다.” 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뜻이란 기(氣)를 거느리는 것이니, 뜻이 전일(全一, 전체가 하나로써 통일을 이룸, 즉 한결같음)하면 기가 동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배우는 이가 종신토록 글을 읽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뜻이 서지 않아서 일 뿐입니다. 뜻이 서지 않은 데는 세 가지 병통이 있으니, 첫째는 믿지 않아서요, 둘째는 지혜롭지 못해서요, 셋째는 용감하지 못해서입니다. 


‘믿지 못한다는 것’은 성현이 후학(後學)에게 밝게 알려 준 것이 명백하고도 친절하여 그 말에 따라 순서대로 나아가기만 하면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되는 것은 이치상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일을 하고도 그런 공이 없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 믿지 못하는 이는 성현의 말이 사람들에게 권유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 생각하고, 다만 그 글을 음미만 할 뿐, 몸으로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현의 글을 읽으면서도 세속의 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은 사람이 타고난 기품이 천차만별이지만 아는 데 힘쓰고 행하는 데 힘쓰면 성공하는 것은 다 같습니다. 뛰며 장사 지내는 놀이[踊躍築埋 용약축매]를 한 것은 맹자의 유희였지마는 마침내 아성(亞聖 성인에 버금가는 분)이 되었고, 저물녘 돌아오고 사냥하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이 든 것[暮歸喜獵 모귀휘엽]은 정자의 버릇이었지마는 마침내 큰 현인이 되었으니, 어찌 반드시 나면서부터 알아야만 덕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혜롭지 못한 자들은 자기의 자질이 아름답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뒤로 물러나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니, 나아가면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되지만, 뒤로 물러나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못난 자가 되니, 이 모두가 자기가 행한 바라는 것을 너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성현의 글을 읽으면서도 몸가짐은 기품에 구애되는 것입니다. 


‘용감하지 못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성현은 우리를 속이지 아니한다는 것과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알면서도, 다만 하던 대로 안주해 버리고 분발(奮發)하고 진작(振作)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어제 한 일을 오늘 개혁하기를 어렵게 여기고, 오늘 좋아하는 일을 내일 고치기를 꺼리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던 대로 답습하면서 한 치를 나아가면 한 자씩 후퇴하니, 이것은 용감하지 못한 데서 오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현의 글을 읽으면서도 전날의 습관에 젖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 세 가지 병통이 있기 때문에 군자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육적(六籍)은 빈말이 되고 마는 것이니, 이 얼마나 탄식할 노릇입니까.


진실로 성현의 말을 깊이 믿어 좋지 않은 자질을 바로잡되 진실로 백배 천배 노력하여 끝까지 물러나는 일이 없게 되면, 큰길이 앞에 나타나서 성인의 경지를 직접 가르쳐 줄 것이니, 어찌 도달하지 못한다고 근심하겠습니까. 대개 사람은 작은 몸으로 천지와 함께 나란히 서서, 학문의 공업을 통해 만물이 제자리를 잡고 자라나도록 하는 것을 능사(能事)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필부(匹夫)라도 그 임금을 얻게 되면, 오히려 한 사람이라도 혜택을 입히지 못할까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은 군사(君師)의 지위를 겸하여 가르치고 길러 주는 책임을 지고 세상의 표준이 되었으니, 그 책임이 얼마나 중하겠사옵니까. 한 번의 어긋난 생각이 정사를 그르치고 한마디 실수가 일을 망치게 하옵니다. 도에 뜻을 두고 도를 따르면 이로 인해 한 세상을 요순 시대로 만드는 것도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요, 욕심에 뜻을 두고 물욕을 따르면 이로 인해 한 세상을 말세(末世)로 만드는 것도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임금은 뜻이 향하는 바를 더욱 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설 문청(薛文淸)이 말하기를, “내 마음이 진실로 학문에 뜻을 둔다면 하늘이 나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학문에 진전이 없는 것은 대개 하던 대로 따르는 데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하였으니,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시옵소서.


- 이이(李珥, 1536~1584), 율곡선생전서 제20권/ 성학집요(聖學輯要) 2/ 제2 수기(修己) 중에서 부분-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권태익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이동환 이식 이재호 이지형 하성재 (공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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