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역사서를 읽는 방법 / 이이
○ 《사기(史記), 여기선 역사의 기록, 즉 역사서를 말함, 이하 '역사서'로 대체》를 읽으면, 모름지기 치란(治亂)의 기틀과 현인 군자의 출처(出處)와 진퇴(進退)를 보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헤아려 규명함)이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이천(伊川) 선생의 말씀이다.
정자가 말하기를, “대개 역사서를 읽을 때에는 한갓 사적(事迹)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와 흥폐(興廢)와 존망(存亡)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또 〈한고조 본기(漢高祖本紀)〉를 읽는다면 한나라 4백 년의 시종(始終)과 치란이 어떠하였던가를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 역시 배우는 것이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나는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반쯤 읽으면 곧 책을 덮고 생각하여, 그 성공하고 패망한 것을 헤아려 보고, 그 뒤에 다시 읽다가 합치되지 않는 곳이 있으면 또다시 정밀하게 생각하였다. 그중에는 다행히 성공한 것도 있으나 불행히 실패한 것도 많았다. 지금 사람들은 다만 성공한 이는 옳다고 하고 실패한 이는 그르다고 하니, 이는 성공한 자도 도리어 옳지 않은 것이 있고, 패망한 자도 도리어 옳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
○ 동래 여씨(東來呂氏 여조겸(呂祖謙))가 말하기를, “대개 역사서를 보되 잘 다스린 것을 보면 잘 다스렸다 하고, 어지러운 것을 보면 어지럽다고 하면서 한 가지 일을 보면 한 가지 일만 알고 마치니, 《사기》를 보면서 취하는 것이 무엇인가. 모름지기 자신을 그 가운데 두고 일의 이해(利害)와 때의 화란(禍亂)을 보듯 해야 하니, 반드시 책을 덮고 스스로 내가 이러한 일을 당하면 마땅히 어떻게 처리할까를 생각하면서 역사서를 본다면, 학문도 진보하고 지식도 높아져서 유익(有益)함이 있게 될 것이다.” 하였다.
○ 허씨(許氏)가 말하기를, “ 역사서를 볼 때에는 먼저 그 사람의 큰 대목을 훑어본 뒤에 그 세세한 행동을 보아서, 착하면 본받고 악하면 경계하여야 내 몸가짐을 바루는 데 유익하게 될 것이다. 그저 그 사건만 기억하고 그 글만 외는 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이상은 사서(史書, 역사서)를 읽는 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독서는 궁리하는 일인데 독서에도 차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가 성현의 말씀을 채택하여 위와 같이 엮었습니다. (중략)
가만히 생각건대, 경전이 있고부터 선비로서 글을 읽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참 유학자는 드물게 나왔고, 임금으로서 글을 읽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잘 다스린 자가 드물게 일어났으니, 그 무슨 까닭입니까. 독서한 것이 단지 귀로 들어가고 입으로 나오는 자료가 되었을 뿐이요, 유용한 도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중략)
아, 선비들이 독서를 통해 부귀(富貴)나 이욕을 구하려 하기 때문에 그 병통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많이 찾아 조사하고 널리 상고하여 오직 겉만을 수식(修飾)하는 데에 힘쓸 뿐, 정작 자기 몸에 절실한 일을 하지 않으니, 생각지 않음이 어찌 심하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이(李珥 1536~1584), '성학집요(聖學輯要)' 부분, 『율곡전서(栗谷全書) 』 율곡선생전서 제20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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