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마음을 해치는 좀벌레
이욕(利欲)이 다 마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의견(意見)이 곧 마음을 해치는 좀벌레요, 소리와 색(色)이 반드시 도(道)를 막는 것이 아니라 총명이 곧 도(道)를 막는 울타리와 병풍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흔히 이욕이 사람의 본심을 좀먹는 것인 줄로 안다. 그러나 이욕이 있다고 해서 다 반드시 본심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무서운 것은 자기의 그릇된 의견을 모르고 여기에 집착하여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 그릇된 의견이야말로 본심의 뿌리를 갉아먹는 마음의 좀벌레인 것이다. 이욕은 사람마다 경계할 줄을 알지만, 한 번 그릇된 의견에 사로잡히고 보면 자신이 미처 깨닫지를 못하니 그래서 더욱 무서운 것이다.
또 사람은 흔히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여색(女色)이 도(道)를 닦는 데 전적으로 방해가 되는 줄로 안다. 그러나 소리와 색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경계할 줄을 아는 까닭에, 이것이 다 반드시 도를 얻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는 말할 수없다.
진정한 방해물은 소리와 색(色)이 아니라 소인의 잔재주와 같은 잘못 뚫린 총명이다. 그릇된 총명을 그릇된 것인 줄로 제 스스로 깨닫기만 한다면 무슨 병일까마는, 그것을 모르고 총명한 체 영리한 체 남을 깔보고 경망스러운 행동을 하니, 이것이 어떻게 도의 방해물이 되지 않겠는가!
공평하고 바른 의론에는 손을 범하여서는 안 된다. 한 번 범하게 되면 부끄러움을 만세에까지 끼치게 된다. 권세 있는 가문과 사리(私利)를 꾀하는 집에는 발을 붙여서는 안 된다. 한 번 붙이게 되면, 몸을 마치도록 더러움을 점찍게 된다.
세상에는 공평(公平)하고 정당한 의론에 반대의 손을 드는 것만큼 큰 수치가 없다. 더구나 공평무사한 정당한 의론임을 번연히 알면서 사정(私情)에 이끌려 고의로 여기에 반대를 하고 나서는 일이다. 만일 한 번이라도 그토록 정당한 일에 반대의 손을 들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편벽된 사람으로 또는 도리에 어두운 사람으로 큰 부끄러움을 남기게 될 것이다.
또 세상에는 권세 높은 가문이나 사리사욕만을 꾀하는 집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만일 한 번이라도 여기에 발을 들며 놓게 되면 지금까지의 결백하였던 마음은 사욕의 발동에 의하여 쫓겨 달아나고, 마침내는 죽어도 씻어버릴 수 없는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홍자성(洪自誠 1593~1665), 채근담(菜根譚)/만력본(萬曆本) 중에서-
▲원글출처: 채근담(홍자성 저/송정희 역, 올재클래식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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