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마음의 밭이 깨끗해야

마음의 밭이 맑고 깨끗해야 바야흐로 책을 읽고 옛 것을 배워도 좋을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의 착한 행위를 보고는 훔쳐다가 그것으로써 사리(私利,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익)를 건지고, 하나의 착한 말을 듣고는 빌려서 써 단점(短點)을 덮어버린다. 이것은 또한 적에게 병기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대어 주는 것이 된다.


학문을 하는 데는 먼저 옛 성현의 훌륭한 말씀을 받아들일 정성 어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고요히 마음의 눈을 떠 스스로의 마음자리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행여 名聞(명문) 利慾(이욕)에 대한 잡초가 뿌리박혀 있지 아니한가 살피며, 깨끗이 쓸고 닦아 비단결 같은 마음의 밭을 이루어놓는 일이다. 그런 뒤에 책을 읽고 옛 성현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서, 마음자리가 온통 잡초가 우거진 것을 그대로 둔 채 책을 읽고 옛 것을 배운다면, 이 사람은 필시 한 가지 옛 착한 행위를 보게 되면 재빨리 그것을 훔쳐다가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할 것이요, 또 한 가지 옛 착한 말을 듣게 되면 그것을 빌려다가 자기의 결점을 덮어 나가는 데 이용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쳐들어온 적에게 무기를 빌려주는 격이요, 또 도적에게 양식을 대어주는 격이라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간(肝)이 병을 받으면 곧 눈이 볼 수 없고, 콩팥이 병을 받으면 곧 귀가 들을 수 없다. 병이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받아 반드시 사람이 다 함께 보는 곳에서 발한다. 그러므로 군자로서 환히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고자 한다면 먼저 어두운 곳에서 죄를 얻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몸 안쪽에 있는 肝(간)이 병들면 몸 바깥쪽에 있는 눈이 잘 안 보인다. 또 몸 안쪽에 있는 콩팥이 병들면 바깥쪽에 있는 귀가 잘 안 들린다.


이와 같이 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속에 들어서 사람의 눈으로 다 같이 볼 수 있는 겉으로 나타난다. 참으로 무서운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캄캄한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군자로서 만일 남이 환히 보는 앞에서 죄를 얻지 않기를 원한다면, 먼저 남이 보지 않는 캄캄한 속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캄캄한 속에서 일어나는 부끄러운 생각들이다.


사람의 마음에 한 권의 참 문장이 있으나 다 낡아 못 쓰게 된 옛 책에 갇혀버렸고, 한 가락 참 음악이 있으나 요사스런 노래와 고운 춤에 깊숙이 묻혀버렸다.학문을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바깥 사물을 말끔히 쓸어버리고 곧바로 본래의 것을 찾아야 겨우 하나의 참된 것을 받아씀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낡은 지혜로 엮어진 무가치한 책과 요사스런 음악보다, 자기 마음속에있는 본성의 참의 문장을 읽고 참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한 권의 참 문장이 들어 있다. 그것은 날 적부터 타고난 것으로 인간의 본연(本然)의 성(性), 곧 참 마음이 속삭이는 참의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낡은 지혜로 엮어진 전혀 무가치한 책으로 인하여 완전히 갇혀버려 아깝게도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그 아름다운 참 문장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한가락 참 음악이 들어 있다. 이것도 날 적부터 타고난 것으로 인간의 참 마음이 노래하는 티 한 점 없는 참의 노래인 것이다. 그러나 애석한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밖에서 들려오는 요사스런 노랫소리와 음탕한 춤에 깊숙이 빠져 자기 본래의 아름다운 참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낡은 책이나 요사스런 노래와 춤 등, 인간의 참 마음을 가리워 버리는 이 모든 바깥 사물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자기 안에 있는 참 문장과 참 음악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내성적인 자기 수양을 극치에 이르게 하는 참된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홍자성(洪自誠 1593~1665), 채근담(菜根譚)만력본(萬曆本) 중에서- 


▲원글출처: 채근담(홍자성 저/송정희 역,  올재클래식스  2012)


※옮긴이 주: 채근(菜根)이란 글자 그대로 나물 뿌리 및 풀 뿌리를 말한다. 하고 많은 좋은 음식 가운데 왜 하필 나물 뿌리 곧 채근이라 제명(題名)한 것일까! ...주자(朱子)의 《소학(小學)》 외편 끝 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송(宋)나라 왕신민(汪信民)이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항상 채근(菜根)을 씹을 수 있다면 백 가지 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하니, 호강후(胡康侯·文定公)가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칭찬하였다.” 라고. 주자(朱子)는 이 글에 주하기를, “사람이 항상 마음 갖기를 자기 한 몸이 산골짜기에 있다고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도의심이 무거워지고 죽음과 삶에 대하여 계교(計較)하는 얕은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지금 사람들은 채근을 씹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본성의 참을 해치는 경우가 많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역자 서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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