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마음에 번민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

수레를 뒤엎는 말(泛駕之馬 봉가지마)이라도 몰아서 빨리 달리게 할 수 있고, 용광로 속에서 뛰쳐나오는 쇠붙이(躍冶之金 약야지금)도 마침내는 주형(鑄型)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만 하나같이 우유(優柔)해서 떨치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득 몸을 마치도록 하나의 진보도 없을 것이다. 백사(白沙)가 말하기를, “사람이 되어서 병이 많은 것은 족(足)히 부끄럽지 않으나 한평생 병이 없는 것이 나의 근심이라.”하니, 참말로 확실한 말이라 하겠다


몸에 병이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마음에 번민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수레를 뒤엎는 난폭한 말이라도 잘 가르쳐서 길들이면 훌륭한 말이 될 수 있다. 용광로 속에서 튕겨져 나오는 다루기 힘든 질 나쁜 쇠붙이라도 잘 다루기만 하면 마음대로 주형(鑄型) 속에 넣어 무슨 물건이든 훌륭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아무리 난폭한 말이라도, 또 아무리 질 나쁜 쇠붙이라도 다 그와 같이 단련하기에 따라 훌륭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가르쳐서 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가르칠 수조차 없는 사람이 있다. 무엇인가 두드러지게 나쁜 점이 있다던가, 아니면 좋은 점이 있다던가 하는, 다시 말하면 어느 한 가지 특성이 있는 사람은 가르쳐서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분명치 않은 성질로서 오늘도 그만 내일도 그만인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르치기 곤란한 사람이다. 사람이 만일 한 번이라도 분발하여 떨치고 일어날 생각을 아니하고 평생을 어물어물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낸다면, 그 사람은 생명이 다하도록 한 치의 진보도 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옛날 명나라 때의 학자 白沙(백사) 선생이 한 말이 있다. “사람이 되어서 몸에 병이 많은 것은 부끄러워 할 것이 못 되나, 마음에 병이 없는 것, 곧 한 평생 근심걱정을 몰라 마음에 번민이 없는 것, 이것이 나의 근심거리다.”


사람이란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근심하고 걱정하고 번민하

는 이 가운데 진보·발전하는 것이요, 또 여기서 큰 성공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한 평생 마음에 번민을 모른다면 어찌 되겠는가! 백사 선생의 말씀이야말로 사람의 근심되는 점을 참으로 정확하게 드러낸 말이라 하겠다.


-홍자성(洪自誠 1593~1665), 채근담(菜根譚)/만력본(萬曆本) 중에서- 


▲원글출처: 채근담(홍자성 저/송정희 역, 올재클래식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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