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가장한 선(善)과 숨은 악(惡) 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악을 듣고서 곧 미워해서는 안 된다. 참소하는 사람의 분풀이가 될까 두려운 것이다. 선을 듣고서 급하게 친해서는 안 된다. 간사한 사람이 몸을 나아감을 꾀할까 두려운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아무개는 나쁜 사람이라고 험담을 하더라도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그들과 입을 모아 함께 미워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별의 별 참소꾼이 다 많으니 이 틈을 타고 혹 어느 못된 참소꾼이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을 풀기 위해서 공연한 사람을 악인으로 몰아 욕을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아무개는 착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을 하더라도 그 말을 그대
로 믿고 성급하게 그와 친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출세를 위해서 별 잔꾀를 부리는 간사한 무리들이 많으니 그 가운데는 혹 이름에 출세에 눈이 어두운 간사한 소인이 속으로 갖은 못된 짓을 다하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룰 생각으로 겉으로 선(善)을 가장하고 나서는 가증스러운 사람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 아무개는 나쁜 사람이라더라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이지적인 냉정한 눈으로 그 사람의 선과 악을 살펴보며, 또 사람들이 아무개는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냉정한 눈으로 그 사람을 살펴보아 그 진실 여부를 분명히 가름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단 한 사람이라도 간악한 참소꾼에 의하여 죄 없이 원통한 누명을 쓰는 사람이 없도록 하며 또 단 한 사람이라도 간사한 소인이 선(善)을 가장하고 출세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악은 숨은 것을 꺼려하고 선(善)은 드러나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므로 악이 나타난 것은 화(禍)가 얕고 숨은 것은 화(禍)가 깊으며, 선(善)이 나타난 것은 공(功)이 적고 숨은 것은 공(功)이 크다.
세상에 악한 일치고 숨은 악 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겉으로는 선(善)을 가장하고서 속으로 남이 보지 않는 가운데 갖은 악행을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르칠 수도 저지할 수도 없으니, 그 피해는 무서우리만큼 크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악은 숨은 악을 가장 꺼려한다. 겉으로 드러난 악이야 가르치고 저지할 수가 있으니 미치는 화(禍)가 적지만, 나타나지 않은 숨은 악은 그 화해(禍害, 재앙의 피해)가 실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또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은 숨은 선행만큼 미치는 공덕이 큰 것도 드물다. 겉으로
선행을 하는 체 하기보다는 말없이 남몰래 쌓아나가는 선행이야말로 크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善)은 환히 드러나는 것을 가장 꺼려한다. 겉으로 드러난 선은 미치는 공덕이 그만큼 얕고, 나타나지 않은 숨은 선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치는 덕이 막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홍자성(洪自誠 1593~1665), 채근담(菜根譚)/만력본(萬曆本) 중에서-
▲원글출처: 채근담(홍자성 저/송정희 역, 올재클래식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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