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문장의 법도 따위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글을 지을 때는 답답하게 법도(法度, 정해놓은 법칙과 형식) 따위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법도는 자연스런 형세에서 나오는 것이지, 평상시에 강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어린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때는 항상 빨리 달리다 잘 넘어지곤 한다. 그런데 턱이 높은 문지방을 넘는 걸 보면, 반드시 한 쪽 다리를 먼저 문지방 밖으로 내놓은 다음, 문지방 안쪽에 있는 다리로 문지방을 사이에 끼워 놓은다. 그런 다음 다리가 문지방 건너편 땅에 닿지 않기 때문에 엎드려서 문지방 말뚝을 붙잡고서 문지방 안쪽의 다리를 거두며 문지방을 천천히 넘는다. 


어찌 어린 아이가 그런 방법을 배웠겠는가? 형세가 부득불 그렇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마치 곧게 흐르던 물도 산을 만나면 산을 안고 돌아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문장을 짓는데에는 법도란 정해진 것이 없고, 그저 만나는 상황에 따라 생겨나는 법이다. 


문장의 편장과 자구와 길이와 기준은 모두 형세에 따라 저절로 그 법칙이 만들어진다. 문장을 지을 때, 마치 세상이 혼돈의 상태에서 개벽하던 때에 천지의 창조주가 정해준 법도를 찾는듯이 한다면, 이는 크게 미혹된 짓이다.


-홍길주(洪吉周, 1786∼1841), 『표롱을첨(縹礱乙㡨) / 수여방필(睡餘放筆) 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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