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군자와 소인의 나뉨은 성(誠)과 위(僞), 실(實)과 명(名)의 차이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너는 군자유(君子儒, 자기를 수양하고 자아실현을 위한 학문,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사람)가 되고 소인유(小人儒, 남에게 보이려는 학문, 즉,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하는 사람)가 되지 말아라.” 하였는데, 군자와 소인의 나뉨은 성(誠)과 위(僞), 실(實)과 명(名)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성(誠)이란 천리(天理)에서 발현되어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요 속 마음에서 우러나와 아무 꾸밈이 없는 것이다. 말은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행동을 돌아보아야 하고, 행동은 어떻게 하려는 의식이 없는데도 이목구비가 모두 바르게 되어야 한다. 성의가 넘쳐 돈후(인정이 두텁고 온후함)하게 되면서 거추장스러운 형식은 없어져 버리고 아름다운 위의(威儀,, 태도나 몸가짐이 바르고 위엄있음)에 심원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웃는 모습마저 정숙하게 되는 것이다.
남이 안 보는 곳에서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나 행동이 여일하고(한결같고) 깜깜한 밤중이나 환한 대낮이나 자세가 변함없다. 부시(婦寺, 잡일을 하는 궁녀와 환관 내시를 통칭하는 말)처럼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전혀 입 밖에 나오질 않고 무얼 경영하며 재물을 쌓을 계책은 마음 속에 아예 움트지도 않는다. 다 해어진 솜옷을 입고도 스스로 관면(冠冕, 벼슬직책에 맞는 공적인 옷차림)에 옥을 찬 것처럼 여기고, 나물 밥에 물을 마셔도 스스로 진수성찬 못지않게 여긴다.
그 자세가 이러하고 그 행동이 이와 같아 위로 부형을 섬기고 임금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아래로 부부와 붕우 관계에 이르기까지 성(誠)과 실(實)로 일관하면, 외면은 어수룩하게 보여도 내면의 경지는 날로 깊어져 가는 군자의 도를 이루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반면 위(僞, 거짓 위, 꾸밈)라고 하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은 가능한 한 귀염을 받으려고 함이요, 말을 그럴 듯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든 사람을 동요시키려 함이다. 고금의 서적을 섭렵하여 박식하다는 명성을 얻으려 하고, 매끄럽게 처신하며 추종하여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
밖으로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세속과 맞지 않는 듯 행동하고, 겉으로 담박한 체하면서 사림(士林, 유학의 도리를 아는 문인, 학자부류)에 붙으려 한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겉모양을 달리 보이는 짓거리를 하고, 사람을 속여 가면서 삿된 목적을 이루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정직하다고 자랑하면서 대중을 미혹시키고 은근히 아첨을 떨면서 세상의 찬사를 받으려 한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보면 모두 그 행태가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육당(陸棠) 같은 적(賊, 도둑 적)을 정문(程門, 정자(程頤)의 문하)에서 지경인(持敬人, 인품이 높은 사람, 즉 인격자)으로 지목하기도 했고, 진회(秦檜) 같은 간인(姦人)에 대해서도 강후(康侯)가 미혹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뒷날 사람을 볼 때 명(名)과 실(實)을 분명히 살펴볼 줄 알면 거의 가하다 할 것이다.
-신흠(申欽,1566~1628),『상촌집(象村集)/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제53권/구정록 중(求正錄中)』중에서-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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