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참과 거짓의 분별

흰 것을 희다고 한 것은 참이고 흰 것을 검다고 한 것은 거짓이다. 그 참과 거짓은 어린아이도 즉시 알 수 있으나 소경은 알 수 없고, 쇠북(종)을 쇠북이라고 한 것은 참이고 쇠북을 경쇠(방울)라고 한 것은 거짓이다. 그 참과 거짓은 어리석은 사람도 곧 분변하지만 귀먹은 자는 알 수 없는데, 가린 바가 있기 때문에 현혹되는 것이다. 작게 가려지면 작게 현혹되고 크게 가려지면 크게 현혹되는데, 작게 가려진다는 것은 흑백 또는 쇠북(종)과 경쇠(방울)의 유(類)이며, 크게 가리려진다는 것은 천하 국가의 기틀이다. 어진이를 간사하다고 하고 간사한 사람을 어질다고 하는 것이 거짓이니, 흰 것을 검다 하고 쇠북을 경쇠(방울)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임금이 더러 깨닫지 못하기도 하는데 심하면 왕망(王莽)이 주공(周公)인양 위장하자 왕망의 거짓된 덕을 칭송하는 자가 날마다 나오고, 조조(曹操)가 문왕(文王)인양 위장하자 조조의 거짓된 공렬을 추대하는 자가 날마다 이르렀으며, 환온(桓溫)은 이윤(伊尹)ㆍ곽광(霍光)으로 위장하고 유유(劉裕)ㆍ소연(蕭衍)은 탕(湯)과 무왕(武王)으로 위장하였으니 거짓의 해를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거짓으로 일을 이룬 자는 또한 남에게도 거짓으로 모함하기 때문에 이고(李固)ㆍ두교(杜喬)는 참으로 곧은 신하였는데도 반역으로 덮어씌워 죽였고, 이응(李膺)ㆍ범방(范滂)은 참으로 바른 사람이었는데도 불순으로 꾸며 죽였고, 악무목(岳武穆)은 참으로 충신이었는데도 ‘이럴 수 없다.’는 말로 덮어씌어 죽였고, 조여우(趙汝愚)는 참으로 국가에 몸을 바칠 만한 신하였는데도 역모를 했다고 덮어씌어 죽였고, 정이천(程伊川 정이(程頤))ㆍ주고정(朱考亭 주희(朱熹))은 참으로 큰 어진 사람인데 가장된 학문으로 몰았으니, 이는 참으로 무슨 심보인가. 임금이 그 거짓을 분간하려면 그리 심하게 거짓을 부리지 않았을 때 해야 한다. 


거짓이 심해지면 반드시 이윤ㆍ주공ㆍ곽광ㆍ문왕이 되기 마련이며 거짓이 극도에 달하면 반드시 탕 임금ㆍ무왕이 되기 마련이다. 임금이 한창 참으로 망하기에 바쁜데 어떻게 그들의 거짓을 분간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신흠(申欽, 1566∼1628), '핵위편(覈僞篇)'부분, 상촌집(象村集)/상촌선생집 제40권 내집 제2/ 잡저(雜著)-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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