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다스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차 어지러워지려고 할 때는 다스리기가 어렵고 이미 어지러워진 뒤에는 다스리기가 쉽다. 장차 어지러워지려고 한다는 것은 위에서는 방자하여 경계할 줄을 모르고 아래에서는 아첨만 하고 바로잡을 줄을 모르므로 한없이 흘러가기만 하고 휩쓸려 나아가기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비록 성인의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그 무너져가는 형세를 막을 수 없으며 비록 뛰어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도랑을 막을 수 없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말하면 요망한 말이라고 하고 일을 당하여 말하면 헐뜯는 말이라고 하며, 총애한 사람을 논하면 모함한다고 물리치고 은폐된 간악을 논하면 곧은 이름을 얻으려 한다고 물리치며, 당연히 옳다고 해야 할 것을 옳다고 하면 옳지 않다고 하면서 반드시 자기가 옳게 여기는 것으로 옳다고 하고, 당연히 그르다고 해야 할 것을 그르다고 하면 그르지 않다고 하면서 반드시 자기가 그르게 여기는 것으로 그르게 여기며, 다같이 어질게 여기는 사람을 어질다고 하면 어진이가 아니라고 하면서 반드시 자기가 어질게 여기는 이로 어질다 하고, 다같이 불초(不肖)하게 여기는 사람을 불초하다고 하면 불초하지 않다고 하면서 반드시 자기가 불초하게 여기는 사람을 불초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귀가 가려지고 아첨하는 사람에게 눈이 가려져서 대궐의 섬돌 밖이 천리보다 멀어져서 떳떳한 법규가 해이해져 바뀌고 벼슬아치들의 기강이 어긋나 날마다 심한 어지러운 지경으로 빠져 든다. 이때에 막아서 성공한 자가 있었던가.

이미 어지러워진 데 이르면 더러운 소문이 사람들의 귀에 가득하고 더러운 덕이 사람들의 눈에 넘치며, 관청이 피폐하여 일이 잗달아지면 아전들이 괴로워하고, 역사가 잦아 혹독하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재물이 탕갈되어 쪼달리면 도적이 일어나고, 정사가 어긋나 사나워지면 경사(卿士)가 원망한다. 아전들이 괴로워하면 어진 사람을 얻어 관청을 다스리려고 하고 백성들이 원망하면 어진 사람을 얻어 세금을 적게 거두려고 하고 도적이 일어나면 어진 사람을 얻어 생활을 안정하게 해 주려고 하고 경사들이 원망하면 어진사람을 얻어 근심을 막으려고 할 것이므로, 먼 데 있는 자나 가까운 데 있는 자가 너나 없이 다스려지기를 원해서 바른 데로 돌아가게 된다. 이게 바로 장차 어지러워지려고 할 때와 이미 어지러워진 형세에 따라 어렵고 쉬운 점이 있는 것이다.

무릇 국가는 큰 그릇이다. 그 다스림이 하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어지러움도 하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선(善)이 쌓인 뒤에 다스려지고 악(惡)이 쌓인 뒤에 어지러워지는 법이니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모두 쌓인 뒤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징조는 아침 저녁의 사이에 비롯되지만 그 징험은 몇 세대 뒤에 나타나는 것이며 그 싹은 아주 미세한 데서 돋아나지만 그 끝은 온 세상을 뒤덮게 된다. 용렬하고 어두운 임금은 어지러워지려고 할 때 위태롭고 멸망하는 데까지 이르리라고는 반드시 알지 못하므로 스스로 풍요롭고 형통하다고 여기고 국권을 쥔 간신도 위태롭고 멸망하는 데까지 이르리라고는 반드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급급하게 임금의 뜻만 맞춰주고 임금의 욕심만 인도하여 한때에 귀염만 취하다가 나라가 망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바꾸어 다른 도모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어디로 가나 부귀(富貴)를 얻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나라를 어지러운 데로 떠밀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옛날 하(夏) 나라 걸(桀)은 왕위에 오른 지 50여 년에 망하고 상(商) 나라 신(辛)은 왕위에 오른 지 30여 년에 망했는데 술로 연못을 만들고 구리 기둥 위로 사람을 걸어가게 하면서 즐기던 날에 어떻게 명조(鳴條)와 목야(牧野)에서 처참한 일을 당할 줄을 알았겠는가. 그러나 하 나라와 상 나라 이후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모두 다 똑같은 길을 걸어 왔으니 애달파할 만한 일이다. 그 길을 바꾸어 다스린 자는 그 기틀은 쉽지만 그 형세는 어렵다. 그 형세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형세를 제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무엇을 기틀이라 하는가? 사물(事物)이 극에 다다르면 되돌아오고 도(道)가 극에 다다르면 통하고 때[時]가 막히면 트이는 것이니 겨울이 다하면 봄이 오고 박괘(剝卦)가 복괘(復卦)로 변하고 그믐 뒤에 초하루가 오고, 밀물이 진 뒤에는 썰물이 지고, 닫혔다가 열리고, 잎이 졌다가 다시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기틀이 과연 쉽지 않은가. 무엇을 형세라 하는가? 어지러운 임금을 섬기는 백성들은 예가 없고 예가 없는 자는 욕심을 절제할 줄을 모르고 욕심을 절제할 줄을 모르는 자는 법령을 침범하는데 이들을 법으로 다스리면 싫어하고 은혜로 대하면 참람하게 되니 형세가 과연 어렵지 않은가. 형세를 제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위임이 무거워야 사람들이 이간하지 못하고 그 권리가 한결되어야 사람들이 흔들지 못하고 그 뜻이 협동되어야 사람들이 현란시키지 못하고 그 도가 올바라야 사람들이 의심하지 못하는 것이니 형세를 제재하기가 더욱 어렵지 않은가.

형세를 제재하려면 임금의 신임을 얻어야 되는데 임금의 신임을 얻는 데엔 세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구차하게 합하면 투박하고, 급박하게 합하면 꺼리고, 애써 합하면 싫어한다. 투박함을 면해야 내 뜻을 행할 수 있으며, 꺼림을 면해야 나의 재주를 펼 수 있으며 싫어함을 면해야 나의 뜻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르게 하면 구차하지 않고 점차적으로 하면 급박하지 않고 정성으로 하면 싫어하지 않는다. 이미 바르게 하고 또 점차적으로 정성껏 하면 뜻이 행해지고 재주가 펴지고 뜻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스리는 법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일을 할 때에 조급한 것을 경계하고, 개혁할 때에 믿음으로 하고, 조화하여 향응하게 하고, 위엄을 보여 두렵게 하고, 편하게 해 주어 안정되게 해야만 위에서는 제멋대로 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전제함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다스림이 서게 될 것이다.

-신흠(申欽, 1566∼1628), '치란편((治亂篇))', 상촌집(象村集)/상촌선생집 제40권 내집 제2/ 잡저(雜著)-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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