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인생은 잠시 붙여사는 나그네 삶일 뿐
가지고 있으면서 그 가진 것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자는 망령된 자이고,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가지고 있고 싶지 않은 듯이 하는 자는 속임수를 쓰는 자이며,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잃을세라 걱정하는 자는 탐하는 자이고, 가진 게 없으면서 꼭 갖고 싶어하는 자는 너무 성급한 자이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있거나 없거나 집착할 것도 없고 배척할 것도 없이 나에게는 아무 가손(加損)이 없는 것, 그것이 옛 군자(君子)였는데, 기재(寄齋) 영감(寄齋 朴東亮 1569-1635) 같은 이는 그에 대하여 들은 바가 있는 이라고 할 것이다.
붙인다(寄, 부칠 기)는 것은 붙여 산다(寓, 머무를 우)는 말이다. 즉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가고 오고가 일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있는 것인가, 아니면 참으로 없는 것인가?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에서 본다면 원래 없는 것이고, 이미 태어난 상태에서 본다면 완전히 있는 것이며, 죽음에 이르고 보면 또 없는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있고 없는 그 사이에 붙여있는 꼴이다. 대우(大禹, 고대 중국의 우임금을 말한다)가 말하기를, “산다는 것은 붙여 있는 것이고 죽음이란 돌아가는 것이다.(生寄也 死歸也)” 하였지만, 참으로 산다는 그 자체가 나의 소유인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맡겨놓은 형체일 뿐인 것이다.
사는 것도 붙여 있는 것뿐인데 하물며 밖에서 오는 영욕(榮辱, 영광과 치욕)이며, 밖에서 오는 화복(禍福)이며, 밖에서 오는 득상(得喪, 이익과 손실)이며, 밖에서 오는 이해(利害, 이로움과 해로움)이겠는가? 이 모두는 성명(性命)이 아니고 붙여 있을 뿐인 것인데, 어떻게 일정할 수가 있겠는가. 영욕이 일정하지 않고, 화복이 일정하지 않고, 득상이 일정하지 않고, 이해가 일정하지 않은데, 사람도 결국 그것들과 함께 모두 죽어 없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그 일정하지 않은 것들은 다 죽어 없어지고 일정한 것만이 죽어 없어지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죽어 없어지는 것은 사람이고,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하늘이며 따라서 하늘과 합치되는 자는 반드시 사람과는 맞지 않게 되는데, 사리에 통달한 자는 그 길을 가리켜 이르기를 주어진 그 시기에 편안히 살고 하늘이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하였고, 성인은 그를 논하기를 평이하게 살면서 운명을 따르라고 하였다.
환경을 따름으로써 구속에서 풀려난 것이나, 천성을 다해 하늘을 섬기는 것이나 그 결과는 같은 것이다. 붙여 있을 것이 와도 붙여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 붙여 있다가 가면 원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며, 상대가 나에게 붙여 있을지언정 나는 상대에 붙여 있지 말고, 형체가 마음에 붙여 있을지언정 마음은 형체에 붙여 있지 않는다면 못 붙여 있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풀이 무성했다 하여 봄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나무가 잎이 졌다고 가을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내 생애를 잘 꾸려가는 것이 바로 내가 좋게 죽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붙여 있는 동안을 잘 처리하면 돌아갈 때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아닌가?
내가 기재 영감과 죄를 같이 얻어 나는 두메산골로 귀양 오고, 영감은 바닷가로 귀양살이 갔는데, 나 역시 산골 내 거소에다 여암(旅菴)이라고 편액을 달았다. 나그네나, 붙여 있는 것이나 그게 그것인데, 이 어찌 같은 병을 앓는 자는 같은 길을 간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그네 신세, 붙여 사는 생활이 어느 때 끝나려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그네를 면하고 붙여 있는 생활을 청산하는 것 역시 조물자(하늘의 뜻)에게 맡겨둘 뿐 나와 영감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나그네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뜻을 그대로 써서 그에게 보내는 것이다.
-신흠(申欽,1566~1628), '기재기(寄齋記)', 『상촌집(象村集)』/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제23권, 기(記) 11수
▲ⓒ 한국고전번역원 ┃ 양홍렬 (역)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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