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바르게 서야할 근본 세 가지 / 신흠
예의와 법도는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지만 먼저 할 바는 아니고 형명(刑名)과 비상(比詳)*은 정사(政事, 정치, 나라와 백성을 다스림)에서 나온 것이지만 힘쓸 바는 아니고 삼군(三軍)과 오병(五兵 5종의병기)은 법률에서 나온 것이지만 긴요한 것은 아니고 돈ㆍ비단ㆍ곡식은 용도에 필요하지만 급한 것은 아니다.
예의와 법도일 뿐이라고 한다면 두 손을 잡고 꿇어 앉는 것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며, 형명과 비상일 뿐이라고 한다면 수갑과 형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며, 삼군 오병일 뿐이라고 한다면 긴 창과 큰 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며, 돈ㆍ비단ㆍ곡식일 뿐이라고 한다면 말ㆍ휘ㆍ저울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니, 이 네 가지는 끝이지 근본이 아니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바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르는 바는 아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르는 데에 근본이 있으니, 임금의 마음은 나라의 근본이고 사람의 윤리는 정사의 근본이고 가르치는 일은 다스리는 근본이다. 이 세 가지 근본이 정립되어야만 임금의 도리가 갖추어지게 된다. 임금은 만민을 거느린 자이다. 어찌 귀와 눈을 즐겁게만 하며 어찌 거처와 의복의 치장만 하며 어찌 분주히 명령에 따르게만 하려는 것이겠는가. 대체로 사람을 길러주어야 하며 사람을 반열(班列)로 다스리며 사람을 현달케 하며 사람을 선양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계통이 거행되지 못하면 나라가 쇠하게 된다.
의리((義理,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밝지 못하면 의혹이 많고 뜻이 확고하지 못하면 많이 흔들리고 경솔하게 기뻐하고 성내면 그로 인해 은혜와 권세를 사고 파는 자가 있게 되고, 드러나게 사랑하고 미워하면 그로 인해 사사로운 일을 하여 원한을 갚는 자가 있게 되고, 전형을 잘못하면 어진 자와 간사한 자가 뒤섞이게 되고, 아첨하는 사람을 가깝게 하면 사사로운 사람이 나오게 되고, 고자질이 행해지면 공과 죄가 문란해지고, 한쪽만 믿으면 모함이 쌓이게 되는데, 이 여덟 가지 폐단이 일어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임금이 참으로 그 폐단을 알아 마음에 반성해 귀와 눈을 공평하게 하여 가리는 것을 제거하고 측근자를 멀리하여 아첨을 못하게 하고 공손한 마음을 가져 바른 대로만 하면 보존될 것은 보존되고 감화될 것은 감화되어 사물이 제 위치를 찾고 하늘과 땅이 제자리가 정해지고 해와 달도 밝게 빛날 것이니 임금의 마음이 나라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천자는 더없이 높고 귀하지만 천자가 볼 때, 그 높은 자리는 밖에서 온 것이므로 그것이 있다고 하여 나의 성정(性情)과 심신(心神)에는 더해진 것이 없으며, 없다고 하여 나의 성정과 심신에는 훼손될 것이 없다. 오직 하늘에서 얻어서 이 몸에 간직되어 있으므로 없어서도 안 되고 훼손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의 윤리이다.
그러므로 천하를 두었다고 즐거워하지 않고 고수(瞽叟 순 임금의 아버지, 배다른 아들을 편애하여 순임금을 살해하려 했음)가 즐거워하는 것을 기뻐한 자는 순 임금이었으니 순 임금을 본받을 만하지 않은가. 아비와 자식의 윤리를 다하면 백성이 너나없이 효도할 것이고 형과 아우의 도리를 다하면 백성이 너나없이 공경할 것이고 지아비와 지어미의 도리를 다하면 백성들이 분별을 알 것이고 임금과 신하의 윤리를 다하면 백성들이 의리를 알 것이다.
윤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충성하지 않고 효도하지 않는 자를 내가 어떻게 벌을 주며 공경하지 않고 의롭지 못한 자를 내가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인륜이 정치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지금의 풍속은 사나워졌다. 갓을 쓰고 끈을 느슨하게 드리우고는 당당하게 떠들며 은밀히 눈치를 보면서 외모는 그럴싸하게 꾸미고 있으나 내심은 방자하다. 대하는 데 방도가 없으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도 남을 것이니 교화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어떻게 바른 데로 돌아오겠는가.
정의(正義) 로 깨우쳐 주어 사사롭고 간사함을 없애고 밝은 도로 인도하여 어두움을 열어 주고 윤리를 들어 깨우쳐서 하늘의 떳떳한 도를 알게 하고 예를 세워 근엄하게 하여 절도를 알게 해야 할 것이다. 풍속이 감화되면 다스려질 것이니 교화가 어찌 다스리는 근본이 아니겠는가.
※[역자 주] 형명(刑名)과 비상(比詳) : 사기 노자한비열전(史記 老子韓非列傳)에 “신불해(申不害)는 정(鄭) 나라의 천신(賤臣)이다. 신자의 배움이 황노(黃老)에 근본하여 형명(刑名)을 주장하고, 한비(韓非)는 한(韓)의 공자(公子)이니 형명법술(刑名法術)의 배움을 기뻐했다.” 하였는데, 그 주에 “신자의 글은 독책(督責)하고 심각(深刻)하기 때문에 술(術)이라 하고, 상앙(商鞅)이 지은 글은 법(法)이라 하니 모두 형명이 되므로 형명법술의 글이라 한다.” 하였다. 비상은 관례(慣例)에 견주어 살펴서 의논한다는 말이니 《莊子 天道》에 “예법도수(禮法度數)와 형명비상(刑名比詳)은 다스림의 끝이다.” 하였다.
-신흠(申欽,1566~1628),『상촌집(象村集)/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제40권 내집 제2/잡저(雜著) / 입본편(立本篇)』-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0
※[옮긴이 주]형명(刑名): 형명(刑名)은 형명법술(刑名法術)의 줄임말로, 법가사상으로 대표되는 한비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이다. 형명은 실질과 올바른 명분을 명확하게 법으로 규정한 것이고, 법술은 그러한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기술이다. 쉽게 말하면, 법치, 즉 정해진 법률에 따라 신상필벌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시행하여 강력한 통치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상촌선생이 제시하는 바르게 서야 할 근본 세가지, 즉 주체가 되는 사람의 올바른 마음, 사람된 도리로써 마땅히 지켜야할 윤리, 그리고 교육은, 법과 제도에 우선하여 바람직한 다스림에 있어서, 비단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 그리고 집단에도 근본으로써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거울은 맑음을 지키는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아야 아름다움과 추함을 있는 그대로 비교할 수 있다. 저울은 균형을 지키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아야 가벼움과 무거움을 있는 그대로 계량할 수 있다. 그러할진대 만약 거울이 움직인다면 대상을 밝게 비칠 수 없고, 저울이 움직인다면 대상을 바르게 계량할 수 없다. 법이란 이런 것이다.”-한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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