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속물근성(俗氣)을 치유하는 것은 오직 책밖에 없다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으나 속기(俗氣 세상시류에 쉽게 요동하고 영합하는 조잡하고 속물적인 기운 또는 마음)만은 치유할 수 없다. 속기를 치유하는 것은 오직 책밖에 없다.


현실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도 의기(義氣)가 드높은 친구를 만나면 속물 근성을 떨어버릴 수가 있고, 두루 통달한 친구를 만나면 부분에 치우친 성벽(性癖)을 깨뜨릴 수가 있고, 학문에 박식한 친구를 만나면 고루함을 계몽받을 수 있고, 높이 광달(曠達)한 친구를 만나면 타락한 속기(俗氣)를 떨쳐 버릴 수가 있고, 차분하게 안정된 친구를 만나면 성급하고 경망스러운 성격을 제어할 수 있고, 담담하게 유유자적하는 친구를 만나면 화사한 쪽으로 치달리려는 마음을 해소시킬 수가 있다.


명예심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처자의 앞에서도 뽐내는 기색이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무의식에까지 침투했던 그 마음이 완전히 풀어지면 잠이 들어도 청초(淸楚)한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일은 마음에 흡족하게 될 때 전환할 줄 알아야 하고, 말은 자기 뜻에 차게 될 때 머물러 둘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허물과 후회가 자연히 적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음미할 것이 무궁무진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선(周旋, 두루 애쓰고 노력함)하다 보면 파탄(破綻)되는 곳이 눈에 보이고, 애호(愛護)하다 보면 지적할 곳이 나타나고, 욕심에 끌려 연연하다 보면 어려운 곳에 봉착하게 되는 법이다.


독서는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시내와 산을 사랑하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꽃ㆍ대나무ㆍ바람ㆍ달을 완상(玩賞)하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단정히 앉아 고요히 입을 다무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다.


차가 끓고 청향(淸香)이 감도는데 문 앞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기뻐할 일이지만, 새가 울고 꽃이 지는데 찾아 오는 사람 없어도 그 자체로 유연(悠然)할 뿐. 진원(眞源)은 맛이 없고 진수(眞水)는 향취가 없다.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말하고 그치는 것은 천하의 지언(至言)이다. 그러나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다 말하지 않고 그치는 것은 더욱 지언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착한 말을 한 가지라도 듣거나 착한 행동을 한 가지라도 보거나 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행한다면, 그날이야말로 헛되게 살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人生一日 或聞一善言 見一善行 行一善事 此日方不虛生.)


시(詩)는 자신의 성향(性向)에 맞게 할 따름이니 이를 벗어나면 각박하고 고달프게만 되고, 술은 정서를 부드럽게 푸는 정도로 그쳐야 할 것이니 이를 지나치면 뒤집혀 질탕(佚蕩)하게 되고 만다.


아무리 만족스럽게 풍류(風流)를 즐겨도 그 시간이 한번 지나고 나면 문득 비애의 감정이 솟구치는데, 적막하면서도 맑고 참된 경지에서 노닐게 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의미(意味)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너무 화려한 꽃은 향기가 부족하고 향기가 진한 꽃은 색깔이 화려하지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귀의 자태를 한껏 뽐내는 자들은 맑게 우러나오는 향기가 부족하고 그윽한 향기를 마음껏 내뿜는 자들은 쓸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군자는 차라리 백세(百世)에 향기를 전할지언정 한 시대의 아리따운 모습으로 남기를 원하지는 않는다.(君子寧馨百世 不求一時之艶)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기를 바라며 지은 문장은 지극한 문장이 아니고,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른 인물이 아니다.


재기가 뛰어난 사람은 공근(恭謹)함을 배워야 하고, 총명한 사람은 침후(沈厚)함을 배워야 한다.


속된 말을 하면 장사치에 가깝고 섬세한 말을 하면 창기(娼妓)에 가깝고 농담을 하면 광대에 가깝게 된다. 사대부의 말이 이 중 한 가지에라도 관련이 되면 위중(威重)함을 잃는 것이 된다.


인후하게 하느냐 각박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장(長)과 단(短)의 관건이 되고, 겸손하게 자신을 제어하느냐 교만을 부리느냐의 여부가 화와 복을 초래하는 관건이 되고, 검소하게 하느냐 사치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가난과 부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되고, 몸을 보호하여 양생(養生)을 하느냐 욕심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느냐의 여부가 죽음과 삶의 관건이 된다.


이름을 드날리게 되면 반드시 중한 책임이 뒤따르게 되고, 너무 기교를 부리다 보면 반드시 뜻밖의 어려움을 당하게 마련이다.


중인(中人)을 보는 요령은 큰 대목에서 나대지는 않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데에 있고, 호걸을 보는 요령은 작은 대목이라도 빠뜨리지는 않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데에 있다.


성색(聲色, 음악(또는 노래)과 여색)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허겁병(虛怯病)에 걸리고, 화리(貨利, 재물과 이익)에 빠지다 보면 탐도병(貪饕病)에 걸리고, 공업(功業)만 추구하다 보면 주작병(走作病 마구 치달려 궤도를 이탈하는 폐단을 말함)에 걸리고, 명예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교격병(矯激病 과격하게 일을 처리하는 폐단)에 걸리고, 옛 학문에만 관심을 쏟다 보면 호로(葫蘆)를 그리는 병*에 걸린다.**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것,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고, 할 일도 없고 해서는 안 될 일도 없는 것, 이것이 출세간법(出世間法)이다.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는 것, 이것은 세간법이고,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는 것, 이것은 출세간법이다.


사슴은 정(精)을 기르고 거북이는 기(氣)를 기르고 학은 신(神)을 기른다. 그래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고요한 곳에서는 기(氣)를 단련하고 움직이는 곳에서는 신(神)을 단련한다.


군자는 사람들이 감당해내지 못한다고 모욕을 가하지 않고, 무식하다고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때문에 원망이 적은 것이다....


문을 닫고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맞는 경계를 찾아가는 것, 이 세 가지야말로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일 많은 세상 밖에서 한가로움을 맛보고 세월이 부족해도 족함을 아는 것은 은둔 생활의 정(情)이요, 봄철에 잔설(殘雪)을 치워 꽃씨를 뿌리고 밤에 향을 피우며 도록(圖籙 도참(圖讖))을 보는 것은 은둔 생활의 흥(興)이요, 연전(硏田 문필 생활)은 흉년을 모르고 주곡(酒谷)에 언제나 봄 기운이 감도는 것은 은둔 생활의 맛[味]이다.


*[역자 주] 호로(葫蘆)를 그리는 병 : 주체성이 없이 구태의연하게 남만 모방하는 것을 말함. 《東軒筆錄》에 “한림 도학사는 우습기도 해. 해마다 호로만 그리고 있으니[堪笑翰林陶學士 年年依樣畵葫蘆].”라고 하였음.


**[옮긴이 주]허겁병, 탐도병, 주작병, 교격병: 格言聯璧(격언련벽)이 그 출전이다. 격언련벽은 중국 청대의 사람으로 금란선생(金蘭先生)이라 알려진 금영(金纓)이 예로부터 전해오는 속담이나 어록과 타인의 격언들을 수집하여 편찬한 격언집(格言集)이다. 격언벽련에는 네가지 병으로 그중에 주작병은 조작병으로 나와 있다. 내용은 이렇다. "1. 濃于聲色(농우성색) 生虛怯病(생허겁병),  2. 濃于貨利(농우화리) 生貪饕病(생탐도병),3.  濃于功業(농우공업) 生造作病(생조작병),  4. 濃于名譽(농우명예) 生矯激病(생교격병)" 즉 허겁병(虛怯病)은 '당차지 못하고 허하여 겁이 많은 병' 탐도병(貪饕病은 '재물과 음식을 탐내는 병'. 탐도(貪饕)는 아무리 먹어도 끝이 없는 식욕을 가진 고대 신화속의 동물인 도철(饕餮)을 가리킨다. 조작병(造作病)은 '일을 일부러 꾸며 만드는 병'. 교격병(矯激病)은 '행동이 자기 과시적이고 지나치게 과격한 병', 격(激)은 생각이나 주장하는 것이 과격한 것을 뜻하고 교격(矯激)이란 비틀어 조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신흠(申欽 1566~1628), '야언(野言) 1'(부분발췌), 상촌집(象村集)』/ 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제47권 / 외집 7-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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