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들의 병폐 두 가지 / 이덕무
재주 있고 경박한 사람은 기교(機巧)를 부림이 간사하고 천박하며, 어리석고 둔한 사람은 기교를 부림이 간휼하고 노골적이기 때문에,
군자들의 안목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중에 혹 간사하면서도 음침하거나 간휼하면서도 비밀스러우면, 이런 사람은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아아, 고금에 기교 부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옛사람들은 자기의 재질을 부릴 줄 알았으나 후세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재주의 부림을 받는다. 자기 재질을 부리는 사람은 마땅히 쓸 데다 써먹고 또한 그만두어야 할 적엔
그만두지만, 재주의 부림을 받게 되면 한없이 날리어 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두려운 일이다.
사람들의 병폐는 부박(浮薄, 천박하고 경솔함)하지
않으면 반드시 융통성이 없는 법인데, 두고 보건대, 이 두 가지를 면한 사람이 대개 얼마 되지 않는다. 부박함은 동(動)의
유폐(流弊)요, 융통성이 없음은 정(靜)의 유폐이니, 스스로 수양하려는 사람이나 남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반드시
참작해야 한다.
두렵고 두렵기는 조금 재주가 있으면서 기운을 부리는 것이고, 민망하고 민망한 것은 전연 알맹이가 없으면서 말을 재잘거리는 것이다.
문장(文章)은 하나의 기예(技藝)인데, 오히려 아담한 것과 속된 것, 진짜와 모방한 것의 구별을 혼동하고 있으니, 어떻게 산수(山水)를 품제(品題, 사물의 가치나 우열을 문예적으로 평가하는 일)하고 어떻게 인물(人物)을 감식(鑑識)하겠는가. 공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문장을 알아보는 법이고, 편견을 가진 사람과는 구설로 다툴 수 없는 것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49권/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2』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역)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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