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절로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은 성인(聖人)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면 결코 측은지심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교묘하게 속이고 아첨하며 일생 동안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어 비록 꾸미는 데 익숙하여 스스로는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 가려진 것이 매우 얇으므로 가리면 가릴수록 나타나니, 고생스럽기만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선(善)을 드러내는 일은 한없이 좋은 일이다. 그 선을 한 사람은 이름이 인멸(湮滅)되지 않고 더욱 힘쓰게 되며, 듣는 사람은 본받아 준칙을 삼으며, 그 일을 말하는 나 자신은 또한 그를 본받은 것이다. 자신을 자제하는 것은 반드시 분명해야 하지만, 남을 대하는 데는 포용을 요한다.
사람이 만약 상대방을 노예나 시정의 장사치를 대하듯이 심하게 책망하면 노여워하나, 상대방을 덕이 있는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면 기뻐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스스로 처신하는 바를 보면 스스로 자기가 노예로 만들기도 하고 시정잡배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스스로 반성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명실(名實)이 서로 부합되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무릇 말을 함에 있어 진심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와 해야지, 단지 목구멍과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상투적인 말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음흉한 사람이 안 된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나는 하고, 남이 하는 것을 내가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행동을 하려 해서가 아니라 선(善)함을 택하였을 뿐이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나 역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나 역시 하는 것은 맹종하려 해서가 아니라 옳은 것을 따랐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아는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울고 웃는 것은 천성이니, 어찌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랴. 어른들은 자신의 기쁨과 노여움을 속이니, 이 점은 어린이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칭찬하는 것은 사실보다 지나치기 쉽고, 헐뜯는 것은 무정(無情)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보다 지나친 것은 진실로 옳아서가 아니요, 무정한 것은 진실로 글러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군자(士君子)는 가슴속에 참으로 옳음과 그름의 분별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 거치고 두 사람 거쳐 전해지는 동안 와전됨이 더욱 심해지는데, 그걸 믿고 남을 의심한다면 그 때문에 자기가 암매해지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러므로 서(恕)를 귀히 여기는 것이다.
독서하여 얻는 것은 정신을 기쁘게 함이 최상이요, 그 다음은 수용(受用)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널리 아는 것이다. 글을 많이만 읽는 것을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섭렵하라는 것은 아니다. 많이만 읽고 연구하지 않으면 막히고 고루해지는 병통이 있기 때문이다.
남을 깔보는 사람은 자신의 식견을 넓힐 수 없다. 교활한 사람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곧 나를 공경해서이다. 군자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먼저 좁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 마음이 좁으면 곧 남을 의심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먼저 그의 작은 허물을 살폈다가 그가 가기를 기다려 곧 비웃는 자를 '물여우의 무리'(狐蜮之倫호역지륜)라고 한다.
원망과 비방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난다. 남이 나를 알아주면 진실로 즐겁다. 그러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해로울 것이 또 무엇이 있으랴. 간사한 사람은 꾸짖을 필요조차 없다. 효과도 없이 나의 성색(聲色)만 수고롭게 할 뿐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 50권/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3』 중에서 부분 발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석호 (역)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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