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剩餘)에 대하여

‘잉여(剩餘)’라는 말은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베와 비단에 잉여가 없다면 옷을 만들 수 없고, 재목에 잉여가 없다면 집을 지을 수 없다. 하물며 솜씨 좋은 아녀자나 기술 좋은 장인이 잉여를 가지고 쓸모 있게 만들어 더욱 자신의 솜씨를 드러내는 경우에 있어서랴. 


문장(文章)의 경우를 말한다면 이는 선비들에게 있어 잉여이다. 하지만 문장(文章)이 없으면 또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옛사람이 이른 바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게 되는 것이 위대하도다.”라는 것이 어찌 이치를 통달한 말이 아니겠는가. 


잉여옹(剩餘翁)*은 잉여라고 자호(自號)하여 쓸모없음을 자처하였으면서도 오히려 시 짓기를 좋아했으니, 이는 쓸모없는 늙은이가 또 쓸모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재를 잘 쓰는 신묘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어찌 잉여옹을 진정 쓸모없게 여겼겠는가. 만약 잉여옹이 쓸모 있게 된다면, 시를 짓는 일이 자기 재능을 더욱 돋보이게 할 한 가지 쓰임이 될 줄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그가 잉여가 된 이유는 잉여가 절로 쓸모없어서가 아니라 진실로 제대로 쓸 줄 몰랐던 잘못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때문에 잉여옹 시집을 모아 작은 책으로 엮었다. 잉여옹 장남의 맏손자 수택(守宅)이 또 빠진 글들을 거두어 속집을 만들었다. 또 만사(挽詞)와 제문을 부록으로 엮어 외편(外篇)으로 삼아 합쳐서 거질(巨帙, 여러 권수(卷數)로 이루어진 책의 한 세트)로 만들었다. 


만약 훗날 사람들이 공경히 완미하고 깊이 생각하여 시문의 오묘한 정취를 얻어 훌륭한 사람이 되는 하나의 바탕으로 삼는다면, 어찌 옷 만드는 부인이 비단 자락을 얻고 장인이 나무토막을 얻는 것일 뿐이겠는가. 이는 진정 쓸모 있음이 분명하다. 마침내 이런 이야기들을 적어 알린다.


-위백규(魏伯珪, 1727~1798),'잉여집발문(剩餘集跋)', 존재집 제21권/ 발(跋)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이주형 채현경 (공역) ┃ 2013


※옮긴이 주: 

1.잉여옹(剩餘翁)은 존재선생의 먼 일가친척으로 아저씨뻘(族叔족숙)되는 위명덕(魏命德)을 가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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