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부(富)귀(貴)존(尊)영(榮)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는 것이 부(富)이고, 굽힐 데가 없는 것이 귀(貴)이다. 사람들이 모두 경애하고 추대하는 것이 존(尊)이고, 사람들이 감복하며 명예롭고 빛난다는 것이 영(榮)이니, 이것이 군자의 부ㆍ귀ㆍ존ㆍ영이다.
재물을 쌓아 두고 부(富)라고 여기고, 작위가 높은 것을 귀(貴)라고 여기고, 과시하며 뻐기는 것을 존(尊)으로 여기고, 사치와 방만을 영(榮)이라고 여기니, 이것이 소인의 부ㆍ귀ㆍ존ㆍ영이다. 소인의 부와 존은 더러는 중도에서 망가져서 몸이 죽는 데 이르기도 하지만, 군자의 부와 영은 이와 다르다. 사람의 힘으로 빼앗을 수 없고, 몸이 죽어도 끝내 없어지지 않는다. 크게는 천지(天地)와 함께 항상 존재하고, 작아도 수천 년, 수백 년 이상 간다. 이를 소인의 부ㆍ귀ㆍ존ㆍ영과 비교하면 고니와 굼벵이의 차이 정도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그 누가 막지 않는데도 하지 않으며, 휩쓸리듯이 소인을 따르는 것은 왜인가. 비단옷과 좋은 음식을 얻으려는 속셈 때문이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높고 좋은 수레를 타려는 속셈 때문이며, 사람을 부리고 호령하려는 속셈 때문이고, 저잣거리 아이들에게 과시하려는 속셈 때문이다.
군자는 이런 것을 싫어하여 계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실정에 가깝지 않은 듯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역시 싫어할 만하고, 할 만한 짓도 아니다. 그렇지만 계획하지 않는데도 자연히 온다면 요(堯)ㆍ순(舜)ㆍ우(禹)가 사양하지 않았던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지만 성현은 마치 처음부터 있던 것과 같이 여겨 비단옷이 추위를 막는 것은 솜옷과 같기에 그 즐거움을 알지 못했고, 좋은 음식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거친 밥과 같기에 그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았다.
옥로(玉輅 황제의 수레)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걸음을 대신하는 것은 녹거(鹿車 작은 수레)와 같다. 집사나 온갖 기술자를 부리는 것은 각기 맡은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지 내가 존귀해질 이유는 아니며, 백성이나 저잣거리의 아이들이 쳐다보는 것은 그들 자신이 우러러보는 것이지 내가 영화로워질 이유는 아니기 때문에 계획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런 것을 계획한다면 천지(天地)와 함께 오래 존재할 수 있는 나의 참된 부ㆍ귀ㆍ존ㆍ영을 잃게 된다. 더구나 그런 것을 계획하여 얻은 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르고, 아울러 그 부ㆍ귀ㆍ존ㆍ영을 누리는 몸을 상실할 것이니, 몸이 망하면 그 누가 부ㆍ귀ㆍ존ㆍ영을 누릴 것인가. 이 이치는 매우 분명하다. 제왕이 이런 이치를 안다면 절대 걸주(桀紂)나, 진 후주(陳後主)나 수 양제(隋煬帝)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경(公卿)이 이런 이치를 안다면 미오(郿塢)의 보각(寶閣)*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치를 모르는 것은 왜인가. 인심(人心)이 위태로워 마음의 작은 차이가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망치며, 몸을 망치는 데 이른다는 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성인의 한마디 한 글자가 사람을 살리는 만금의 가치가 된다는 것을 알겠는가. 누가 순(舜)이 말했던 16글자*가 우리 인간의 부ㆍ귀ㆍ존ㆍ영을 위한 무한한 보물이 된다는 것을 알겠는가?
※[역자 주]
1.미오(郿塢)의 보각(寶閣) : 동탁(董卓)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시대에 참적(僭賊) 동탁이 미(郿) 땅에 세운 창고, 즉 만세오(萬歲塢)를 말하는데, 동탁은 이 창고에다 30년 이상 먹을 곡식을 저장했다. 《後漢書 卷72 董卓列傳》
2. 순(舜)이 말했던 16글자 :《서경》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에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 진실로 그 중정(中正)함을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위백규(魏伯珪, 1727~1798),'부ㆍ귀ㆍ존ㆍ영(富貴尊榮)', 존재집 제15권/ 잡저(雜著)/격물설(格物說)/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오항녕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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